[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역대 슈퍼볼 광고 최고의 반전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역대 슈퍼볼 광고 최고의 반전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2.1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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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광고장이들이 모이는 한 사이트에서 올해 슈퍼볼을 앞두고 ‘광고장이들이 뽑는 역대 최고의 슈퍼볼 광고’라는 제목의 행사 예고와 안내를 대문에 걸었다. 지난 52년 동안 슈퍼볼에 집행되었던 광고 1편을 꼽고, 선정한 이유를 포함한 평을 함께 싣는 행사였다. ‘한 광고로 치우칠 게 뻔한데, 어떻게 감당하려나’라고 걱정했다. 당연히 주최 측도 같은 생각을 했다. 제목 아래에 주의사항으로 ‘1984년 매킨토시 광고는 제외’라고 큼지막하게 써져 있었다. 21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몇몇 매체에서 20세기 최고의 광고를 뽑는 행사를 벌인 적이 있다. 어떤 매체에서는 ‘1984 매킨토시 광고’가 50% 이상의 표를 쓸어갔으니, 의당 이 광고를 제외하고 경쟁을 벌이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대표적인 광고 잡지인 애드에이지(Ad Age)에서는 1999년 3월에 ‘애드에이지에서 뽑은 20세기 100대 캠페인(Ad Age Advertising Century: Top 100 Campaigns)’란 특집기사를 실었다. ‘1984 매킨토시 광고’에게 1위가 따 놓은 당상인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12위에 그치고 말았다. 추정컨대 애드에이지에서는 이 광고를 ‘100대 캠페인’에 포함시킬 것인가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했을 것이다.

‘1984’ 애플 광고는 슈퍼볼 경기 중에 딱 한 번만 방영되었다. 우리가 ‘캠페인’이라고 할 때의 일정 기간에 걸쳐 하나나 다수의 광고가 같은 테마 아래 집행된 게 아니었다. 그 한 번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바로 다음 날부터 언론 매체들이 앞 다투어 보도 경쟁을 벌였다. TV 프로그램 안에서 수 차례 광고물을 방영하면서 컷마다 분석을 해주고, 조지 오웰의 소설과의 연관성까지 집중 설명해주면서 광고를 알리는 것을 넘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런 대작 광고물을 만들고 한 번만 방영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 자체가 반전이었는데,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언론이 나서서 구전을 시키고 전설로 등극시키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1999년 하반기에 정식으로 미국 주재원 업무를 시작하여, 처음으로 미국에서 직접 중계를 광고와 함께 시청한 슈퍼볼이 2000년 경기였다. ‘닷컴볼’이라고 불릴 정도로 닷컴 버블 속에 닷컴들이 광고주로 뛰어들었다. 화려함이나 유머나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한 화면과 대사가 난무하는데, 방송사고가 아닐까 정도로 깜짝 놀라게 한 광고가 있었다. 그냥 노란색 배경에 까만색으로 짧은 문장이 써져 있는 게 다였다. 그리고 첫 번째 문장은 놀랍게도 ‘This is the worst commercial on the Super Bowl(최악의 슈퍼볼 광고를 보여드립니다).’라고 너무나 솔직하게 자기고백을 하고 있었다. 열흘 남짓한 기한을 두고 충동적으로 슈퍼볼에 광고를 내기로 결정한 것부터가 반전이었다. 광고회사로서 슈퍼볼 광고 제작을 거절한 건 이상하긴 하지만 정황을 알고 보면 의당 해야 할 행동이었다. 그걸 광고 회사 출신의 광고주 마케팅 책임자가 자신의 옛 동료들에게 프리랜서로 시키고 본방으로 틀게 된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광고주인 lifeminders.com이 이후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고 염가에 팔려버린 것은 반전도 아니다.

https://clios.com/awards/winner/6174
https://clios.com/awards/winner/6174

2013년 슈퍼볼 광고의 주인공은 30초당 4백만$씩 내고 중계방송 중에 집행된 광고가 아니었다. 단일 경기로는 미국 내에서 최대 시청자가 보는 가운데 21세기와 어울리지 않게 정정 사고가 났던 바로 그 경기였다. 난데없는 정전을 가지고 오레오는 ‘You can still dunk in the dark(어두워도 덩크슛을 할 수 있어).’란 카피와 함께 오레오가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트윗을 날린다. 경기 당일에만 16,000회 이상 리트윗된 전설을 만들었다. 모두가 어둠에 묻혀 있을 때 오레오만이 환히 빛나는 반전을 이루어냈다. 몇몇 브랜드들의 트윗이 이후에 나왔지만, 모두 안하느니만 못했다. 이후 몇몇 기업들에서는 큰 행사마다 트윗 날릴 찬스만을 보았으나, 그런 우연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오레오는 소셜 부문에서 2년 이상 선두주자로 실력을 키워왔고, 그랬기에 예기치 않은 돌발 사건에서 대박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전은 타이밍이고, 준비된 자만이 타이밍을 잡는다.

‘광고장이들이 뽑는 역대 최고의 슈퍼볼 광고’의 결과를 보니, 중간에 슬그머니 ‘1984 매킨토시 광고’가 끼어 있었다. 그 광고를 선정하고 평을 쓴 사람은 바로 주최 측의 편집인이었다. 몰표가 나올 것 같아서 제외했지만, 이 광고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변명이 나왔다. 이 역시 편집자는 반전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이 위대한 작품에 대한 다른 이들의 말할 권리를 막아버리고는 자신만 그를 누린 건 좀 찌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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