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꿈 텍스트의 재구성

[광고와 춤을] 꿈 텍스트의 재구성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2.15 08: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장된 억양으로 기업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꿈은 방편(方便)이 된다. 꿈에서라면 어떤 표현이든 가능하다. 이성의 검열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록색의 모노톤으로 처리된 이미지, 부재하는 자전거의 외관과 같은 기표는 포스코 광고를 꿈의 텍스트로 해독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우리는 가끔 총천연색 꿈을 꾸기도 한다.

포스코 광고를 꿈 텍스트로 읽고자 할 때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노인과 아이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철의 부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꿈의 텍스트를 읽고자 할 때 우리는 부재하는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주변적인 것은 중심적인 것이란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응축’과 ‘치환’은 실제 꿈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꿈 작업의 주요 기제이다. 진짜 꿈을 해석해 내기 위해 꿈 해석자가 부재하는 기표를 찾고, 주변적인 기표에 주목하듯 우리는 꿈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뒤바뀌고(displacement) 빠진(condensation) 기표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후에 실제 꿈 텍스트를 ‘재구성’해야 한다. 바퀴 2개는 있어야 할 기표가 빠진 일종의 ‘응축’이다. 주변적인 것으로 보이는 작은 집, 바다, 덤불 등은 ‘치환’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표들은 부재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꿈 텍스트에서 여성은 부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에 있는 노인과 아이는 ‘저기’에 있는 여성의 세계로 가려고 한다.

‘철을 만드는 세계적인 철강회사 포스코’란 기표는 철의 현존을 지시한다. ‘철이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멈춰 버릴지도 모릅니다’란 문장은 멈춰있는 바퀴와 공중 부양해 있는 모델의 비현실적인 상황을 지시한다. 다른 세계로의 ‘물리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자전거, 자동차, 지하철과 같은 기표들은 ‘세계와의 접속’을 의미한다. 웃고 있는 노인과 노인의 허리를 껴안은 채 웃고 있는 아이는 ‘친근함’을 의미한다. 철은 아이와 어른이란 이질적인 두 세계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간적인 매개물로 제시된다. 철의 부재는 세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철은 감과 옴의 순환적인 운동을 보증해 주는 근원적인 물질로 의미화 된다. 광고에서 재현된 세계인 ‘원’이란 기하학적 구조 위에서 바퀴의 형태로 존재하는 자전거란 지표는 우에서 좌로 다시 우로 움직이는 순환적 운동을 지시한다. ‘감’과 ‘옴’이란 운동은 현존재가 새로운 소통의 지평을 여는 본능적인 방식이다. 포스코는 제약 없는 세계를 꿈꾸는 현존재를 위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저기로, 다시 여기로 가고 오게 해 준다.

우리는 가끔 이상스런 꿈의 조각들을 꿰어 맞추려고 시도할 때가 있다. 비논리적인 꿈의 영상들은 우리의 종결욕구를 자극한다. 여기에 전략적 기회가 있다. 꿈은 그 자체로 해석을 촉구한다. 꿈의 텍스트가 논리적인 한 편의 이야기로 종결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결국 꿈의 의미가 무엇이든 그것은 해석자인 우리가 부여한 의미가 된다. 꿈의 텍스트는 의미의 부재증명을 통해 과장되고 비약적인 주장에 대한 혐의를 벗는다.


황지영 경성대학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