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결정적인 순간은 예기치 못한 때 온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결정적인 순간은 예기치 못한 때 온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2.26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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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종목의 글로벌화란 측면에서 20세기 말의 총아가 농구였다면 21세기는 단연코 축구이다. 2019년 2월말 현재 16강전이 진행되고 있는 챔피언스리그는 한국에도 열렬 팬들이 많다. 손흥민의 토트넘을 포함한 몇몇 경기는 나도 시간에 관계없이 아들과 함께 본방사수를 한다. 경기 전후와 하프타임에 대회 스폰서인 하이네켄 광고가 나온다. 거기서 아들과 둘 다 좋아하는 왕년의 스타를 반갑게 만난다. 바로 이태리 출신의 피를로이다. 피를로가 내게 처음으로 각인된 건, 유럽 대표팀들 간의 국가대항전인 유로 2012대회였다.

유로 2012 대회는 2010년 월드컵도 우승하며 당시 무적함대라고 불렸던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 대회에서 비록 최우수선수(MVP)는 우승한 스페인의 이니에스타 선수에게 뺏겼지만, 가장 각광받은 선수로 준우승을 한 이태리를 이끌었던 피를로 선수를 꼽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피를로는 MVP경합에서 이니에스타를 줄곧 앞서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우승팀에서 MVP가 나와야지’하는 여론에 아깝게 밀렸단다.

피를로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슬렁슬렁 동네 산책하는 듯이 경기장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래도 이태리 공격의 출발과 결정적인 기회가 그의 발끝에서 나온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그를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이 좋다’고 한다. 그는 힘을 뺄 줄 안다. 힘을 빼고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잔뜩 힘이 들어간 상대는 지레 지쳐버린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내지 못한다. 힘을 빼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장면을 그는 2012 유로대회 영국과의 승부차기에서 연출했다. ‘파넨카킥’이라고 하는 힘을 빼고 슬쩍 볼을 원래 골키퍼가 있는 곳으로 올려, 한쪽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골키퍼를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파넨카킥은 대담한 시도이다. 골키퍼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쉽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성공하면 상대방의 기를 제압하는 효과가 있다. 피를로에게 파넨카킥을 당한 영국은 다음 키커가 실축을 하고 결국 이태리에게 4강 자리를 내준다.

한국 축구에는 예전에 발발이 형 선수들이 많았다. 경기 내내 공이 있는 곳이면 그 선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부지런히 공을 쫓아다닌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공격을 맡았던 어느 선수 하나는 최전방 측면 끝에서 공을 뺏겼다가 결국 패스되는 공을 우리 진영의 구석까지 따라와서 공을 뺏는 투지를 보여 그 왕성한 체력을 과시함과 함께 투지의 화신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과연 그 선수들이 실제의 승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 유형의 플레이는 유럽이나 남미와 같은 선진국과의 국제경기에서는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선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완급을 조절하며 뛰는 선수를 우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로 꼽는다.

“It’s when nothing happens that anything can happen.” 피를로가 대미를 장식한 챔피언스리그의 하이네켄 광고의 카피이다. 직역하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정도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은 예기치 못한 때 온다”라고 의역할 수 있겠다. 광고에서는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골이 들어가는 상황이 나온다. 실제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항상 눈을 부릅뜨고 살 수는 없다. 어떤 때는 피를로처럼 힘을 빼야 정말 필요할 때에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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