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텍스트들에게 물어 봐

[광고와 춤을] 텍스트들에게 물어 봐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2.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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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줄어들고 굶주린 채 죽어가고 있는 북극곰에 대한 이야기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상징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WWF 광고에서는 해빙 위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건강해 보이는 북극곰이 등장한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공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무렵의 광고이기 때문이다.

최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의 활동 영역은 해양포유류 중 가장 넓다. 그들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해빙들 사이를 이동하면서 사냥한다. 광고에서 북극곰은 정 중앙이 아니라 약간 우측,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서식지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 ‘임박한 위기’를 함축한다. 북극곰 주변의 공간적 여백은 상이하다. 전방, 좌측, 우측의 공간은 협소한 반면 상대적으로 후방의 공간은 넓게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북극곰의 의도적인 배치는 후방으로의 이동을 지시하고 있으며 이는 ‘사라짐’, ‘잊혀짐’을 의미한다.

WWF 광고텍스트는 상호텍스트성의 차원에서 가장 잘 해석될 수 있다. 텍스트들 간의 유기적인 관련성, 다른 텍스트로부터 인용하는 특성, 의미의 관계적 특성을 지칭하는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의 태생적 한계이자 의미를 만드는 특유의 힘이기도 하다.

‘AMAZING GRACE’란 단어는 선행하는 텍스트들과 관련성을 맺고 있다. 텍스트의 의미는 선행하는 텍스트들의 의미에 의존한다. 그런 고로 이전 텍스트들에게 그 의미를 물어봐야 할 터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존 뉴턴의 ‘참회문’, 그들의 땅을 탈취당하고 서부로 강제이주 해야만 했던 체로키 인디언들이 불렀던 고난의 노래,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난사 희생자의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 도중 불렀던 찬송가를 지시한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이 모든 상이한 사건들, 상이한 역사적 맥락을 지시하고 그 흔적들을 보유한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적인 인용은 흑인 노예, 체로키 인디언, 총기난사 사망자, 북극곰으로 이어지는 ‘무고한 희생’이 종결되지 않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내려다보는 시선(근접촬영), 엎드린 자세, 잠들어 있음과 같은 기표들은 북극곰의 취약성, 희생을 내포한다.

화자는 신의 대행자로서 우리에게 명령한다. “아이들을 살아 있는 행성에 남겨두라”, “북극곰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지 마라”. 두 문장에서 언급되는 ‘남기다(leave)’, ‘사라지다(vanish)’, ‘살아있는 행성(a living planet)’이란 단어는 다른 텍스트(죽은 행성)에서의 지구의 상황을 인용한다. ‘살아있는 행성’ 이란 단어는 해밀턴(Edmond Hamilton)의 단편, ‘죽은 행성(The dead planet)’을 지시하며 비극적인 지구의 운명을 반향한다. 지속가능한 문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해밀턴의 답은 이렇다. 문명의 지혜가 은하와 은하에 거주하는 모든 종족들에게 이익을 주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상호텍스트성은 결국 텍스트들 간에 주고받는 ‘대화적인’ 자질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는 선행하는 다른 텍스트들을 지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광고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사랑스러운? 북극곰의 가상성과 도덕적 어투 사이의 부조화는 성찰의 세계를 열지 못한다.

 


황지영 경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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