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삼일절을 둘러싼 반전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삼일절을 둘러싼 반전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3.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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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싹 외워야 해. 대입에 안 나온 적이 없어.”

기미독립선언문 / 위키피디아 제공
기미독립선언문 / 위키피디아 제공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고교 국어 교과서 첫 꼭지가 바로 기미독립선언문이었다. 국어 선생님께서 위 말씀과 함께 학기를 시작하셨다. 현대문이라기보다는 고문(古文)에 가까웠다. 그때 사람들이 정말 이런 한자투성이 문장을 썼을까 의문이 생겼다.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라는 첫 문장은 아마 정상적으로 고교를 다닌 이라면 기억하고 있으리라. 이 문장부터 왜 굳이 이렇게 썼을까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 독립선언문을 쓴 이는 잘 알려진 대로 최남선(1890~1957)이다.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서 우리는 최남선을 몇 차례 만났다. 최초의 신체시라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우리동네의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까지 새겨져 있다. 또한 <소년>(1908년 창간)과 <청춘>(1914년 창간)이란 근대적 잡지를 창간한 출판인으로도 잡지 이름과 함께 외워야 할 이름이었다.

1910년 전후에 일본 수도 도쿄에 유학한 조선 학생들 중에 세 명의 천재가 있다면서 그를 일컬어 ‘동경삼재(東京三才)’라고 했다. 위에 얘기한 최남선과 한국 현대 소설의 개척자인 이광수, 그리고 소설 <임꺽정>의 홍명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나중에 이들을 ‘조선 3대 천재’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재주를 지닌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문을 두고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이기도 하고, 서예가에 금석문 연구가로 이름이 높은 위당 오세창(1854~1953)이 이렇게 말했단다. 최남선으로서도 오세창이 그랬다면 별말이 없었을 듯하다.

“요즘 젊은 애들이 한문을 몰라서 큰일이야.”

불길처럼 퍼지는 독립 물결을 두고 당시 일본 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경고문’이란 제목으로, 현대문으로 바꾸면 이런 내용의 얘기를 했던 이가 있었다.

‘최근 들어 불법 폭력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선량한 시민과 학생들이 불순한 일부 무리의 선동에 휘말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가져와 정부를 비판하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적인 대입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평화시위가 아닌 불법 폭력시위에 정부는 다른 시민들에 대한 무고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진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한 진실을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단순한 군중심리와 감정에 휩쓸려 시위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일부 불만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틀림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요구는 정부에서 이미 연구 중인 부분이 많으므로 불법 폭력시위로 혼란을 조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차라리 부단한 자기개발을 통해 더욱 윤택한 삶을 누리는 데 집중하는 게 더 좋을 듯 합니다.‘

‘80년대 독재정권 시대에 위의 문장을 읽고, 당시 정부나 주요 언론에서 발표하는 글들과 너무나 비슷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위의 글을 무려 3차에 걸쳐 발표한 이가 이완용(1958~1926)이란 건 사실 반전도 아니다. 그런 글이 똑같은 형태로 60여년 후에도 쓰임이 있었다는 게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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