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난리통에 사냥을 갔다니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난리통에 사냥을 갔다니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3.18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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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3대 여걸이라고 불리는 여인들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천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나서, 천하를 주물렀다. 멀리 기원전 200년경의 한(漢)을 진(秦)에 이어 천하의 주인으로 만든 유방(劉邦)의 부인인 여태후(呂太后)가 그 첫 번째이고, 서기 700년을 전후하여 당(唐) 태종(太宗)의 후궁이었다가 태종의 죽음 이후 절로 쫓겨나 비구니가 되었다가 고종(高宗)의 비(妃)로 극적인 변신을 하며 나타나서 고종의 사후에는 몇 명의 황제를 맘대로 자리에 앉혔다가 결국 자신이 주(周) 왕조를 개창하면서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의 족적을 남긴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그 두 번째이다.  

서태후

마지막 여걸이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50년을 장식하며 본인은 궁궐내의 암투와 그에 따른 정적의 살해, 사치와 기행(奇行)으로 전설과 같은 인물로 남은 자희태후(慈禧太后)라고도 불리는 서태후(西太后)이다. 여태후나 측천무후는 워낙 오래전 인물이라 남아 있는 사서(史書)도 많지 않고, 현재에 느끼는 실감도도 떨어진다. 그렇지만 서태후는 지금의 중국을 얘기하는 배경 인물로도 등장할 정도로 깊은 연관이 있기에, 그에 관한 기록들을 여러 방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를 제위에 올린 인물이 바로 서태후이다. 극적으로 직전 황제인 광서제(光緖帝)가 죽기 며칠 전에 부의를 후계로 결정했고, 황제가 죽은 다음 날 서태후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서태후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기록한 사서에 ‘경자서수(庚子西狩)’라는 구절이 나온다.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경자년에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태후 시절의 경자년이라면 1900년을 말하는데, 서구 세력, 특히 선교사들과 중국의 기독교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북경을 중심으로 한창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편견에 가득 찬 오리엔탈리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경의 55일’에 보이는 것처럼 미국을 비롯한 6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해이다. 서태후도 의화단이 떨치고 일어선 초기에만 하더라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의화단이 북경을 압박해 오면서는 공개적으로 의화단을 지지했고, 6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향해 밀어 닥치자 황망히 황제까지 대동하고 서안을 향하여 도망을 갔다. 사서에서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는 것은 바로 그 도주를 일컫는 것이었다. 자고로 중국에서는 황제가 난리를 피하여 궁문을 나서서 도망하는 것을 ‘사냥을 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하긴 황제의 이름과 같은 자가 있는 것만 해도 휘자(諱字)라고 피해, 피휘(避諱)한다고 하는데, 그런 황제에게 ‘도망을 간다’ 식의 무엄한 용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피휘가 어느 정도 심각한 일이었는가 하면, 1908년 푸이가 선통제로 제위에 올랐을 때, 1911년 신해혁명 후에 중화민국 최초의 총리를 지낸 탕사오이(唐紹儀)는 마침 미국 출장 중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본국 정부에 자신의 이름의 마지막 자인 ‘儀’를 같은 발음의 ‘怡’로 바꾼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2차대전까지의 일본군을 보면 작전명령서에 ‘후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적군들의 움직임을 표현할 때는 ‘후퇴’ 혹은 ‘패퇴(敗退)’라는 단어를 남발하다시피 했지만, 자신들에게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나아간다는 뜻으로 ‘전진(轉進)’이라고 썼다. 보통 우리가 쓰는, 그리고 ‘나아갈 진(進)’과 어울리는 ‘전진(前進)’과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일본어로는 ‘젠신(ぜんしん)-前進’과 ‘텐신(てんしん)-轉進’으로 발음의 차이가 그래도 좀 나지만, 우리말로는 같아서 한국전 때에 ‘후방 XX지점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거나, 어떤 경우는 무작정 정말 앞으로 전진 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발생하곤 했다.

미국의 한 블라인드 업체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하면서, 블라인드를 블라인드라 부르지 않고 새롭게 정의한다고 발표하는 것을 봤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빛을 조절하고, 빛을 적절하게 분산시킨다는 의미에서 ‘Light controller', 'Light diffuser'라는 표현을 썼다. 맘에는 들지 않지만 적절한 용어가 없어서, ’조광기(調光機)‘와 ’산광기(散光機)‘로 칭하겠다. 그리고 조광기와 산광기가 그 사용자들에게 줄 혜택으로 무드를 고조시켜준다고 해서 ’Mood enhancer'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이런 변화들을 ‘빛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Light can change everything)’는 슬로건으로 뒷받침했다.

공자(孔子)는 정치에 대하여 말씀을 하면서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이 정명이란 것은 실제와 그 나타나는 바, 이름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뜻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명분이나 지위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두 가지 갈래로 해석될 수 있으나, 실상 이 둘은 또 서로 연계되어 있다. 서태후나 일본 군대에서 보이는 예들은 두 번째의 정명을, 어떤 지위에서는 모름지기 어때야 한다고 해석하여 그것이 첫 번째의 정명을 어지럽힌 경우이다. 거기에는 사서를 읽을 후세나 작전명령을 받을 군인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황제로서의, 대일본군으로서의 체면만을 고려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체면을 세웠는지는 몰라도, 정치에 실패했고, 결국 후세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블라인드 광고에는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정명 자체에 위배되는 면은 없다. 또 거기에는 블라인드의 존재 이유가 되는 ‘빛’이라는 요소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뚜렷이 했고, 사용하는 고객들의 위치에서 그 혜택을 표현하려 했기에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

올바른 광고는 현실에서 빗나가지 않게 근본을 뚜렷이 하면서, 그 바탕 위에 이름 곧 이야기할 내용을 바로 세우고, 고객의 위치에서 그 눈높이에 맞추어 약간의 흥미 요소를 섞어, 더러는 과장되게 혜택을 표현할 수 있다. 반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왜곡과 거짓이라는 자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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