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세 남자와 여자들?

[광고와 춤을] 세 남자와 여자들?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4.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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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불가사의한 외계의 에너지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활력을 얻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1985년 영화 코쿤에서 양로원의 노인들이 처한 상황을 떠 올려보라. 광고 속 노인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힘겨루기 하는 듯 보이는 동성 간 신체 접촉, 타투, 서핑보드는 노인이란 몸 단서를 제외한다면 남성성을 재현하는 익숙한 기표들이다.

세 명의 노인들의 인종 차와 ‘신체 접촉’은 격이 없는 친밀한 관계, 오랜 우정을 함축한다. 관계 유지의 산물인 ‘우정’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노인 셋은 그들의 우정을 견고하게 유지시켜 줄 서핑이란 동일한 취미, ‘결코 포기하지 않을’ 정신, 무엇보다 MARTEX란 브랜드를 공유하고 있다. 동시에 3명의 노인은 상이한 ‘개성’을 의미한다. 숏보드, 롱보드, 펀보드란 상이한 보드의 선택, 타올을 걸치거나 두르는 상이한 방식, 다른 색 타올들 역시 이들의 개성을 지시한다.

가운데 남성의 뒤편에 있는 오렌지색 문양의 보드, 흰색 배경, 어깨에 걸치고 있는 흰색 타올은 오렌지 칼라의 배경색 그리고 화이트칼라의 브랜드 네임과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가운데 남성과 칼라의 연결구조는 셋 사이에 존재하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권력관계를 함축한다. 흑인 남성의 상아색 보드에 반사되고 있는 오렌지 칼라는 가운데 남성의 상대적인 영향력을 은유한다. 몸이 제시되는 상이한 방식 역시 가운데 남성의 상대적인 영향력을 함축한다.

광고에 배치된 세 명의 노인들, 3개의 서핑 보드들이란 기표는 ‘3’을 지시한다. 익히 잘 알려진 3의 의미에 관한 문화적 지식은 피타고라스와 프로이트에게 영향 받은 바 크다.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던 피타고라스는 3이 지닌 주술적 의미를 ’오시리스‘ 즉 남성으로 본다. 프로이트 역시 상징기표 3을 ’남근‘으로 읽어낸다. 따라서 노인은 남성, 남성성을 의미한다.

‘시트들과 타올들은 난생 처음이다’란 모호한 문장은 이 터프한? 노인들이 단 한 번도 편안한 침대시트와 부드러운 타올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의미인가? 문장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한 가지 단서는 ‘몸과 영혼을 위한’이란 수식어구이다. MARTEX의 시트들과 타올들은 단지 사용가치를 지닌 사물로서의 시트들, 타올들과 달리 이 셋의 영혼을 위한 어떤 것을 수행한다.

광고에서 이야기의 완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부재하는 ‘촬영자’이다. 노인들은 전면을 향해 미소 짓고 있으며 경쟁적으로 남성적인 몸을 전시하고 있다. 상체에 힘이 들어간 몸 자세란 기표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앞에 있음’이란 맥락을 지시한다. 노인들을 활력 넘치는 남성들로 만드는 존재는 광고에 부재하는 그러나 남성들과의 관계에 의해 현존하는 여성들이다. 결국 이들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타올들과 시트들은 여성들을 은유한다. 이제 시트들과 타올들은 난생 처음이다는 문장은 ‘여성들은 난생 처음이다’는 문장으로 고쳐 쓸 수 있다. 그리하여 ‘노인은 어쩔 수 없는 남성’이라는 불변의 성정체성이 재수립된다.

 


황지영 경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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