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맥주 한 잔하며 풉시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맥주 한 잔하며 풉시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4.09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져 간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회적 이슈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간이 없이 반대 아니면 지지의 이분법이 지배한다. 대개 정치적인 보수와 진보를 기준으로 특정 이슈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슈에 대한 최초의 정보부터 자신이 즐겨보는 매체로부터 받는다. 이후에 이슈에 대해 이해를 하고, 태도를 결정하며, 동조하거나 배격할 것인가의 실제 행동으로 나아갈 때도 자신과 같은 정치적 선호를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한다.

지난 호에 기술한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들에게 행패를 부린 할아버지가 이슈에 관계없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정혜신 박사에게 사과를 한 것처럼,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할 수만 있다면 뭔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꼭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극단적인 대결과 증오는 무디어지지 않을까. 문제는 그런 대립각에 서 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이다. 그걸 실험으로 옮긴 기업이 있다.

페미니즘, 동성애, 기후변화 등에 관한 상반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선발했다. 사전에 찍은 영상을 보면 이들은 완전 대척점에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을 ‘뉴라이트’라면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자들은 남혐’으로 ‘여자들은 애를 낳는 게 할 일’이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남성과 ‘좌익’으로 ‘100% 페미니스트’이고 ‘여자를 집안일만 해야 한다는 이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여성의 조합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같은 공간에 들어가는 자체만으로도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완전히 다른 신념을 지닌 두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가구를 조립하거나 함께 청소를 하는 등의 미션을 준다. 이들은 서로 도와가면서 미션을 달성한다. 두 사람이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느껴졌을 때, 이들을 맥주 두 병이 놓인 그들이 방금 만든 테이블로 인도한다. 그리고 사전에 촬영된 각자의 신념에 대해 얘기한 인터뷰를 본다. 당황해하는 그들에게 그대로 등 돌리고 각자의 길로 그냥 갈 것인지, 맥주 한 잔 하면서 서로의 신념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이네켄에서 'Worlds Apart an Experiment(갈라진 세계의 실험)'이란 표제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남자면 남자고, 여자면 여자인 거지, 무슨 소리야”라며 단호한 경멸과 거부의 태도를 보인 남자가 있었다. 자신과 함께 가구를 맞출 일을 할 여성이 군대에 복무했다는 얘기를 듣고 호감을 보인다. 손발을 맞추며 미션을 완수한 후에 그 여성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게 된다. 표정이 굳어진 남성이 출구 쪽으로 나간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어쩔 수 없군’이라는 표정을 짓다가 환하게 웃는다. 그 남성이 “장난 한번 쳐봤어요”라고 하며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남성은 맥주를 마시며 말한다. “세상은 흑백으로 이분법으로 생각했었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기를 택한 이들은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신의 세상을 열라(Open Your World)'란 하이네켄의 슬로건에 딱 맞고, 맥주라는 제품의 속성의 장점, 갈등을 조장하며 대립이 첨예하게 곳곳 사사건건 벌어지는 현재 사회에 딱 맞는 광고이자 반전이었다. 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