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1910년은 한국 최대 옥외광고 간판의 해였다

[신인섭 칼럼] 1910년은 한국 최대 옥외광고 간판의 해였다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19.04.17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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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일본과 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동방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는 바깥 세상에 문을 연다. 일본에 비해 24년 뒤졌다. 미국, 영국, 독일 등과 통상을 하게 된 것은 이로부터 6년 후인 1882년이다. 3년 뒤에는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알렌이 한국에 들어온다.

곧 이어 록펠러의 Standard Oil의 제품이 들어오는데, 석유이다. 등불 켜는데 사용하는 등유가 들어온 것이다. 기록에는 1886년에 10만1,200갤론, 1 갤론을 3.8리터로 환산하면 38만4,600리터 정도다. 날개 돋힌 듯 팔리기 시작해서 1897년에는 수입이 200만 갤런(760만 리터)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한국 전체 수입의 2.5-3.5%를 차지하게 된다.

왜 이렇게 폭증했나? 뻔하다. 해 지고 어두워지면 불을 켜는데 석유처럼 편리한 기름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통 기름보다 밝다. 1910년 한국 인구는 1,300만, 가구의 수는 280만.  한 가구당 4.75명이다. 한 집에 한 방울씩 써도 280만 방울이 된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 박사의 독립신문이 창간되었고 주3회 발행하는 순 한글 신문 4 페이지 (그 가운데 한 페이지는 영문)가 나왔다. 이 신문은 창간 이듬 해에는 영문판을 따로 발행하는데 광고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영문판에는 스탠더드 석유 총판이 낸 광고도 있다.

1903년 10월 28일에는 황성신문에 그림에 보는 광고가 게재되었다. 솔표 석유, 미국 스탠더드의 광고이다. 광고에는 재미 있는 그림 둘이 있다. 하나는 밝은 불빛이 퍼지는 솔표 석유이고 다른 것은 티사 석유인데 꺼먼 연기가 보인다. 이른바 비교광고이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의 일이다. 이 광고는 퍽 자상하게 여러 가지 설명을 했는데, 판매 대리점에는 그림과 같은 현판(懸板) 즉 간판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1910년에 솔표 석유는 해방전 한국에서 가장 큰 (높은) 광고탑을 세웠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맨 밑에 서 있는 사람 모습이 있어서 이 광고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대략 20M쯤은 될 듯 하다. 그러니 그 당시 한국 최대/최고의 광고였을 것임에 틀림 없다. 현판에 일본 카타카나 글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을 경유해서 한국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까짓 광고! 천만의 말씀이다. 광고에는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예술, 마케팅 등등. 자세히 따져 보면 이러저러한 얽힌 이야기가 많음을 알게 된다.

 


신인섭 (전) 중앙대학 신방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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