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시간이 많을수록 짧아지는 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시간이 많을수록 짧아지는 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4.23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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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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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의 편집자가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던 마크 트웨인에게 이틀 만에 2쪽 짜리 단편소설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틀 동안 2쪽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소. 이틀에 30쪽은 쓸 수 있소. 2쪽을 쓰려면 30일이 필요합니다."ᅠ

뜻은 너무 자명하다. 생각을 다듬어 의미를 압축하여 정제된 문장들을 구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비슷한 일화들은 문화예술계에 괘 많이 회자되어 왔다. 20세기 전반 영국의 최고 소설가로 유머 섞인 에피소드로는 마크 트웨인에 뒤지지 않은 서머셋 모옴에게 신진 소설가가 찾아와서 말했다. “왜 내 소설은 어느 잡지도 실어주지 않는 거죠? 나는 3일에 한 편씩 소설을 써서, 보내는데 1년이 걸려도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요.” 모옴이 조용히 그 신예 소설가에게 말했다. “1년을 걸려서 써보시오. 3일도 안 되어서 원고를 사서 게재하겠다는 곳이 나타날 거요.” 미술계로 넘어오면 ‘3일 만에 그린 작품은 1년이 넘어도 팔리지 않는데, 1년 걸려 완성한 그림은 3일도 안 되어 팔린다’는 식으로 변형이 되어 돌아다닌다.

“이 이야기를 담기에는 15초는 너무 길고 30초는 좀 짧습니다.”

광고계에서는 요즘에는 듣기 힘들지만 이전에 누군가 프레젠테이션에서 했다며, 이런 말이 창작자도 모른 채 돌아다니기도 했다. 30초 운운한 것이 아마도 미국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15초’와 ‘30초’라는 구체적인 비교 대상들이 반전의 효과를 가져 온다.

“시간이 없어서 편지가 길어졌습니다”라는 문장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한 부인이 전장에 일본군으로 나간 지아비에게 썼던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에 실렸던 것이었다고 나는 처음 접했다. 나중에 보니 세계 여러 나라에 비슷하게 편지를 마무리했다는 기록들이 있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몇 년째 이름만 올리고 있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감보다 좀 여유 있게 원고를 보내는 걸 원칙 비슷하게 삼고 있다고 한다. 마감은 연기하라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고, 그렇게 원고를 미루는 게 작가답게 보이는 거라고 하는 이들이 사실 많다.

하루키같은 유명 작가와 비할 바가 아니지만, 나도 원고는 마감에 맞춰서 보낸다. 마감에 못 맞춘 경우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마감을 잘못 알고 있었다. 다른 한 번은 마감보다 3~4일인가 먼저 원고를 보내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무나 일정이 바빠서 원고를 일찍 보내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실제로 그랬다. 초고를 곱씹는 시간은 물론이고 보내는 걸 잊을 것만 같았다. 그 원고의 길이는 역시나 그 연재의 이전 원고보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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