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이 앎을 향유하며 살았노라

흔들림 없이 앎을 향유하며 살았노라

  • 장성미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4.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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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메마른 거리의 목마름을 적셔주고 지는 꽃 뒤에 고개 드는 초록빛을 돋보여준다. 어느새 봄은 서서히 가면서 자연에게 날마다 옷을 갈아 입히는 화려한 시간이다.

昨夜雨疏風驟(작야우소풍취), 지난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왔고

濃睡不消殘酒(농수부소잔주). 한껏 자고 나도 술기운이 남아있네

試問卷簾人(시문권렴인), 주렴을 걷는 이에게 물으니

卻道海棠依舊(각도해당의구). 해당화는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知否,知否(지부, 지부)? 모르는 소리, 모르는 소리

應是綠肥紅瘦(응시록비홍수). 잎은 살찌고 꽃은 야위어 졌으리라

如夢令(여몽령) / 李淸照(이청조)

봄의 절정을 이렇듯 절제된 언어로 노래했던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문인 이청조(李淸照)!

그는 중국고대 문학의 한 장르인 사(詞)의 본색을 잘 살려 작품을 쓰면서 민간에서 문인들의 세계로 넘어온 사(詞)의 문학성을 한껏 펼쳐내며 사의 품격을 제고(提高)시킨 작가 중의 한 사람이고 여성이었다. 현대사회와는 다르게 남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옛 중국의 지성사회에서 그는 여성이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문학과 학문을 풀어낸 지성인이었다.

여성이 지식 습득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세상에서 그녀는 부친의 남다른 안목으로 인하여 어려서부터 지식의 세계를 항해하며 훈육되면서 성장했다. 이청조의 호학(好學)하는 기질과 배움의 열망이 드높은 남편을 만나 함께 지적(知的) 동반자로 성장을 했기에 당시의 지성세계에서 이름난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고 때로는 남성 문인들과 교류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대가(大家)들의 문학을 냉철하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당(唐)나라를 대표하던 문학의 장르였던 시(詩)가 송(宋)나라로 오면서 사(詞)라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의 등장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한 시대를 풍미하며 문인들의 손에서 앞다투어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있었으나 북송말에 이르기까지 갖추어진 이론서가 없었다. 그러한 사단(詞團)에 그녀는 작품만을 만들어내지 않고 문학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중국문학사상(中國文學史上) 최초로 사에 관한 이론과 논평을 ‘〈사론(詞論)〉’에 담아내는 문학적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청조가 결혼 후에는 문학뿐 아니라 학문의 동반자인 남편과 함께 생활을 근검절약하며 역대의 고서(古書)와 문물(文物)을 수집, 연구하며 학문세계를 향해 노력을 기울였다.

중원(中原)에서 평화롭게 100여 년이 넘게 유지되던 나라에 느닷없이 불어닥친 전쟁으로 인해 남쪽을 향한 피난길에 남편이 병사(病死)하고 비록 이곳 저곳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도 수집한 역사적 문물과 자료들을 지키려 노력한 학문적 열정의 기록이 그녀의 글 ‘금석록후서(金石錄後序)’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시대 대부분 여성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한정된 삶에 순응하며 그저 ‘수(繡)만 놓는 삶’으로 만 살아가지 않았고 시대적 제약에 멈추어 서있지 않았던 이청조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적 분위기가 농후한 가정에서 훈도(薰陶)되며 쌓아온 재능을 지적인 활동에 마음껏 발휘하며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살다간 지성 이청조!

중국 지성사(知性史)의 대표적인 여성이 된 이청조가 천 년의 세월이 갔는데도 세상에 끊임없이 회자(膾炙)되는 것은 작품에 문학적 성취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인생이 진솔하게 살아서 담겨있고, 아울러 그녀의 현존하는 글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자세와 앎을 향한 추구가 절실하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성이 지식 탐구를 하면서 학문세계에 몰두하며 살아가기 쉽지 않던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으로써 꿋꿋이 살아간 선구자의 모습을 흔들림 없이 보여주어서 일 것이다.

행복했던 한 시절, 지성인으로서 앎을 향유(享有)하는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일면에서 그녀의 지적 열망의 추구를 향한 삶의 소소한 모습이 지금도 남겨져 있다.

“……매일 저녁을 다 먹고서 명성(明誠: 남편의 이름)과 귀래당에 돌아와 차를 끓이며 쌓여있는 책 중에 어느 책 몇 쪽 몇 번째 줄에 어떤 전고(典故)가 있는지 내기를 하며 차를 마셨었지……” (…每飯罷(매반파),坐歸來堂烹茶(좌귀래당팽다),指堆積書史(지퇴적서사),言某事在某書(언모사재모서)、某卷(모권)、第幾葉(제기엽)、第幾行(제기행),以中否角勝負(이중부각승부),為飲茶先後(위음다선후)… <金石錄後序〉에서)

明代의 〈千秋绝艳图〉 중에 李清照 / 필자 제공
明代의 〈千秋绝艳图〉 중에 李清照 / 필자 제공

 


장성미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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