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삶은 없었다! 이 삶은 광고인인가, 참을인인가?

지금까지 이런 삶은 없었다! 이 삶은 광고인인가, 참을인인가?

  • 김성목
  • 승인 2019.05.0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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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기 전까지 학생 혹은 취준생으로 살아가면서 마케팅에 대한 학습은 여러 강의 그리고 자료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지만 어떤 강의에서도 어떤 자료에서도 광고주 갑질에 대한 대처법이나 예시를 간접적으로 학습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현업에서 생활하며 부딪혀 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대행사에서 생활하다 보면 다양한 광고주 갑질을 경험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광고주가 광고대행사 직원의 얼굴에 물을 뿌린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예가 있다.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각종 갑질 사례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생활하다 보면 일이 힘들기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어쩌면 AE 연차가 쌓인다는 것은 업무 역량뿐만 아니라 광고주의 갑질에도 묵묵히 버텨낼 수 있는 멘탈이 단련되었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광고대행사에서 성장해오며 본인이 겪었던 그리고 주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광고주 갑질 케이스를 5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1. 지금은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ASAP형

이미지 셔터스톡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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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에서 신입으로 시작하며 필수로 알아 둬야 할 용어가 있다면 ‘ASAP(As Soon As Possible)’로 ‘가능한 빨리’라는 뜻을 지닌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광고대행사에서는 광고주 요구 사항이 대부분 급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주 측에서도 내부적으로 의사결정이 빨리 이뤄지지 않아 결국 대행사에 업무가 ASAP으로 요청되는 것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잔인한 ASAP이 많다. 퇴근하기 전 메일이 와서 읽어보면 내일 오전까지 제안서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며,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 순간 급건 요청 메일이 와서 결국 그날은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앞의 사례는 비록 AE 본인이 스스로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면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급한 디자인/개발 요청이거나 매체 세팅 등에 대한 ASAP 건은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까지 함께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에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진다. 1분 1초 급한 마음과 긴장의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멘탈이 붕괴돼 멍하니 있는 본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광고주의 ASAP 건을 이해하지만 업무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여 요청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2. 당신의 제안을 루팡하겠습니다, 스틸형

이미지 셔터스톡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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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는 꾸준한 영업활동을 통해 광고주의 대행 업무를 수주할 제안서를 작성하게 된다. 광고주에서 Pick한 대행사가 아닌 이상은 비딩이라는 제안 경쟁 대회로 진행하게 되는데, 보통 많은 대행사 가운데 1개의 대행사만 선택되는 자리기에 제안서의 전략 / 컨셉 / 아이디어 / 실행안 등에 많은 힘과 열정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공들인 제안서라 할지라도 결국 광고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딩에서 탈락하게 된다. 멘탈 갑인 대행사에서 ‘탈락’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것이기에 엄청난 절망감에 빠지지 않는다. 다만, 광고주 측에서는 탈락한 대행사의 전략이나 아이디어 등 일부를 활용하기도 하고 비용이 저렴한 대행사를 선택한 후에 탈락한 대행사의 (훌륭한) 제안을 줘서 운영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있어서는 아무리 멘탈 갑인 대행사라 할지라도 분노와 상실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3. 진짜진짜진짜최종.pptx, 수정형

이미지 셔터스톡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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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흔한 최종 파일’이라 검색하면 이미지 탭에서 수많은 수정 관련 이미지가 나온다. 그만큼 상대방의 생각에 맞춰 업무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대행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제안서, 보고서, 스토리보드, 디자인, 개발안 등 무한한 수정 요청을 하는 광고주 유형이 있다. 본인이 잘못한 업무에 대해 광고주의 수정 요청을 받은 것은 성장의 발판이 된다. 하지만, 수정 요청안이 누가 봐도 산으로 가는 내용이고 정리 없이 조금씩 수정 요청을 주는 상황이라면 이때부터 AE의 스트레스는 시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디자인 수정의 경우 ‘아이콘을 바꿔주세요’, ‘자간을 좁혀주세요’ 등 계속해서 수정 요청이 오게 되면 수정 버전이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 ‘진짜최최최최최종’ 식으로 높아져만 가고 디자이너의 스트레스는 폭발하게 되어 결국 AE는 짜증을 듣게 된다. 심지어 무한한 수정을 거쳐 완성하고 나면 광고주 측에서 기존의 버전이 더 괜찮은 것 같다고 하는 순간 AE와 디자이너의 멘탈은 가루가 된다.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AE는 내부 디자인팀, 개발팀 외부 랩사 등을 잘 다독여 줘야 하고 광고주를 잘 설득해야한다. 어쩌면 수정형 광고주를 잘 대처하는 게 AE의 커다란 숙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4. 화려하면서 심플하게 해주세요, 물음표형

이미지 셔터스톡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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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방향성 없이 알아서 잘 해주길 원하는 광고주 유형이 있다. 표면적으로 바라보면 광고주 터치가 없으니 오히려 업무하기 쉽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최종적으론 결국 대행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에 오히려 앞서 설명한 수정형 광고주 유형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분들은 최소한 방향성은 갖고 있으니까. 명확한 방향성이 없는 가운데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어떤 건지 아시겠죠?”, “보자마자 와~ 할 수 있는 거요, 그쪽이 전문가잖아요”, “뭔가 2% 부족한 느낌인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이해할 수 없는 요구까지 진행된다면 모든 팀이 멘붕에 빠지게 된다.

 

5. 내가 제일 잘나가, 허세형

이미지 셔터스톡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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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와 여러 번 혹은 장기간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광고주와 대행사 간의 회식자리가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이 회식자리를 잘 보내면 그동안 광고주와의 오해도 풀고 서로 친해져서 앞으로 수월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업의 즐거움을 느끼는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광고주 자신의 연봉을 자랑하거나 대행사와 비교하는 회사 자랑 등의 ‘나는 너보다 위에 있다’라는 식의 허세 마인드로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우울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E는 광고주의 허세에 맞장구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 때마다 한 편으론 슬프기도 하고 한 편으론 대단한 직업이라고 생각된다.

 

앞의 5가지 광고주 갑질 유형으로 광고대행사의 삶을 살펴보았다. 위의 광고주 갑질 유형이 반대로 을질 유형으로 바뀌어 광고주가 피해를 입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 갑과 을의 구조가 대행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뿌리박혀 있는 것이기에 해결되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문화가 형성되어 간다면 갑과 을이 수직적인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구조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배려’의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배려도 마찬가지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해 줬을 때, 우리 서로는 향기 그윽한 꽃을 주고받지 않을까.

 


김성목 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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