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서비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서비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6.10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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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피자는 2017년 2월에 네이버와 손을 잡고, '챗봇 주문'을 대대적으로 론칭했다. 문자 그대로 전화 통화할 필요 없이 챗봇과의 채팅을 통하여 주문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기대만큼 이용 고객의 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 ‘챗봇’이란 용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낯설고, 로봇과 채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같은 서비스이지만, '간편 주문'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용 고객 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물론 ‘간편 주문’은 최소한 네이버에서는 범용적으로 쓰이기에 더욱 쉽고 친근하게 와 닿았을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계나 로봇,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반감이나 불안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영국의 왕립스코틀랜드은행에서 2016년에 '로보-어드바이저( robo-advisor)'란 챗봇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갈수록 은행에서도 고객들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길 원한다(Our customers increasingly want to bank with us using digital technology)."고 했다. 그런데 이 은행의 서비스 개시를 알리는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에서는 챗봇 서비스 도입을 통하여 440개의 자리를 없앤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은행이 첨단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제고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기사에서 더욱 중요하게 볼 부분은 뒤에 나왔다. 그렇게 고객들이 원하고, 앞서가는 서비스라고 강조하면서 은행은 25만 파운드 이상의 자산을 맡긴 고객들에게는 계속 대면 투자자문 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면 서비스가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은행 스스로도 인정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화가 될수록 아날로그적인 서비스가 더 많이 나타나고, 더욱 크게 가치를 인정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 얘기를 어느 강연 자리에서 하니까, 유통 업체의 중역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챗봇을 비롯한 고객과의 거래나 서비스의 디지털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인데, 어떻게 아날로그적인 서비스의 증가를 얘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 설명에 문제가 좀 있었음을 인정하고 보충/수정하여 말씀드렸다.

"당연히 대세는 디지털입니다. 모바일 등 대면하지 않고 일어나는 매출이 늘어날 거예요. 그런데 유통에서 컨시어지나 발레주차, 배달과 같은 사람이 몸으로 뛰어야만 하는 서비스도 역시 늘어납니다. 아날로그적인 그런 서비스를 차등적으로 함으로써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브랜드 충성도도 높이고, 전체적으로 서비스 자체의 가치도 증가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서비스에서도 양극화가 더욱 분명하게 일어날 겁니다."

사람의 타고난 그리고 궁극적인 쾌감이나 만족은 아날로그적이다. '90년대 대중 디지털의 시대가 열리면서부터 디지로그니 하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디지털을 내친다는 ‘디지털 백래셔(Digital-backlasher)’라는 이들도 일찌감치 디지털 초창기부터 등장했는데, 디지털 부문에서 가장 앞섰던 이들이 이들 디지털 백래셔의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은 여행도 디지털 시설이 없이 온몸으로 부딪히는 곳으로 찾아간다. 디지털이 기승을 부릴수록 아날로그의 가치가 올라가는 반전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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