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제1차 세계대전과 포스터 - 프로파간다

[신인섭 칼럼] 제1차 세계대전과 포스터 - 프로파간다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19.06.20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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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세계대전 (1914-1918)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유명한 모병 포스터가 탄생했다.

영국 포스터는 1차대전이 시작된 1914년, 국회 모병위원회 요청으로 캑스턴 광고회사가 제작한 것으로 당시 국방장관(Secretary of State for War)이었던 키츠너 경(백작, Lord Kitchener)이 모델이 됐다. 키츠너는 수단, 이집트, 남아프라 등 여러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설적인 장군이었다.

영국 국민 여러분

(키츠너 경이) 당신을 원합니다.

우리 나라 군에 입대하세요!

국왕 폐하 만세(영국 국가)

이 모병 캠페인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서양 건너 미국이 제1차대전에 참가한 것은 개전 2년여가 지난 1917년 4월 6일이었다. 미국의 참전으로 탄생한 포스터가 유명한 “I WANT YOU for the U.S. ARMY ENLIST NOW" 또는 아래  ”Nearest Recruiting Station(가까운 모병장소)“이다. 미국이 참전한 1917년 작품이다. 이 포스터는 2차대전 때에도 사용했고 여러 가지 배리에이션이 나왔다. 1917 - 1918년 기간에 400만부를 인쇄해서 사용했다. 지금도 미국의 아이콘 같은 포스터로 이름 높다.

미국은 1차 대전 참전 결정 1주일 후에 윌슨 대통령 명령으로 공보위원회(Committee for Public Information)을 창설했고, 대대적인 홍보와 프로파간다 캠페인으로 온 미국을 전쟁 지원에 동원했다. CPI 책임자는 언론인 출신 크릴 (Creel)이었고, 현대 PR이 시작됐다. 이 CPI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전후 미국 PR의 창시자들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Public Relations라는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미군정 기간인 1947년 한국내의 공보/홍보 업무를 통합, 운영한 민간공보처(Office of Civil Information)이었다. OCI는 사실상 PR회사 조직이었으며 113명의 스탭 가운데는 76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OCI 책임자 스튜어트 (Stewart)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공보처 고문이었다. 4.19학생혁명 이후 1960년에 우리 나라 최초로 대대적인 정부의 전국 여론조사가 실시된 것은 아마도 이 스튜어트의 자문이 있었을 것이다.

패전한 일본에 맥아더 사령부(GHQ라 부른다)가 일본 정부 및 지방자체단체에 Public Relations 담당 부서를 두고 정부가 하는 일을 알리도록 하라는 “건의”를 받아들여 고심 끝에 나온 용어가 “광보(廣報)”였다. 애초에는 “홍보(弘報)“라는 말이 적당하다고 했다. 그런데 1930년대 만주에 설립한 홍보협회가 한 못된 짓 기억이 생생하던 때라 이 말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유명한 포스터, 그리고 현대 홍보 조직은 전쟁의 부산물이었다.

 


신인섭 (전) 중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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