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Stan Lee(스탠리옹)을 추모하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Stan Lee(스탠리옹)을 추모하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8.11.20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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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tan Lee 트위터

한국에서 1970년대에 만화는 해롭다면서 만홧가게 가는 애들 혼내고, 만홧가게 주인을 애먼 살인범으로 몰고 하는 일들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만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역시나 빠르게 그런 여론이 이미 1940년대 말에 조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 대표로 나선 인물이 정신과 의사인 프레드릭 웨르덤(Fredric Wertham)이었다. 웨르덤이 만화의 해악을 얘기하는 내용은 컴퓨터 게임이 두뇌 발달을 저해하고,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요 이십 년간 수시로 나왔던 얘기와 별다를 바 없다. 스탠리 옹은 토론 무대에서 웨르덤을 상대하는 대표 선수로 자주 나섰다고 한다. 한 번은 웨르덤이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있는 비행 청소년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만화책 독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하여 스탠리 옹이 이렇게 반박했다.

"우유를 마시는 애들 조사를 해보면, 그들도 대부분 만화책 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요. 그럼 우유도 금지해야 할까요
(If you do another survey, you'll find that most of the kids who drink milk are comic book readers. Should we ban milk)?"

웨르덤 박사 식으로 갖다 붙이는 통계가 얼마나 많던가. 아주 쉬운 주변 사레로 스탠리 옹의 반격은 과녁을 제대로 잡았고, 통렬하게 명중한 반전의 일격이었다. 조사를 했건 말건 수치를 내세우면 뭔가 과학적인 것 같고, 그럴 듯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스탠리옹은 더 가깝고 숫적으로 우세한 대상을 가지고 와서 설득력을 높이면서 분위기도 바꾸어버렸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은 멀리 있지만 우유를 마시는 아이들은 바로 우리 집에 있다. 또 우유를 마시는 건 부모들이 권장하는 행동 아닌가.

우리의 스탠리옹은 웨르덤 박사를 상대로 한 토론에서는 아주 뛰어났는데, 미디어를 다루는 데는 미숙했나 보다. 그의 말로 들으면 이렇다.

"그(웨르덤)와 토론에서 많이 붙었지. 재미있었어. 왜냐하면 내가 항상 이겼거든. 근데 거의 보도가 되지는 않더라고(I used to debate with him, which was fun because I usually won – but that was rarely publicized)."

‘폭로’나 ‘고발’ 등의 제목을 붙이고 나오는 사안들이 메디어를 타면, 처음에는 '빵'하고 터뜨리며 관심이 폭발한다. 이후 최초의 발언의 모순과 빈 곳이 드러나는데, 그때가 되면 관심도는 이미 떨어진 상태인 경우가 많다. 토론까지 이어지면서는 토론이 벌어진다는 자체만 알려질 뿐이고, 어떻게 진행되었고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보도가 되지 않는다. 항상 밝은 쪽으로만 살아온 것 같은 스탠리 옹도 젊은 시절에는 미디어의 피해자였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

여담으로 스탠리옹의 나이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송해 선생보다 다섯 살 형이고, 마릴린 먼로보다 네 살 오빠’라고 하면 깜짝 놀란다. 한국의 광고인들과 만나서는 신인섭 선생님을 모셔 왔었다. “신인섭 선생님보다 일곱 살 위 형님이셔.” - 신 선생님, 느닷없이 죄송합니다.-

* 스탠리옹의 말들은 그의 자서전 <Excelsior>로부터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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