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체념이 의지로 변하는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체념이 의지로 변하는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6.24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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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체 지구의 어디쯤에 착륙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1931년 ‘동양’으로 가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가, 당시는 일본 땅이었던 쿠릴 열도의 갈대숲에 남편과 함께 불시착한 앤 머로우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는 1935년에 나온 에세이집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단다. 이름과 정황에서 알 수 있듯 대서양 단독 비행 황단에 성공한 최초의 조종사인 찰스 린드버그의 부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곧 그들은 구조되었고, 신원이 밝혀지면서 일본 전역이 그들을 환영하며 들썩였다. 그 에세이집에서 잊을 수 없는 대목을 일본의 저명한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스가 아쓰코(須賀敦子)는 <먼 아침의 책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펴냄, 2019)이라고 한국에 번역, 출간된 책에서 이렇게 옮겼다.

사요나라, 하고 이 나라 사람들이 헤어질 때 입에 올리는 말은 원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이라는 의미라고 그때 나는 배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체념의 표현인가.

일상적으로는 별로 쓰지 않는, ‘이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에 쓰는 일본의 인사말이 ‘사요나라’라고 배우기는 했다. 원래의 의미와 유래는 알지 못했다. 직역을 하면 ‘그래야만 한다면’, 곧 ‘떠나야만 한다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떠나지 말라고 사정을 하지도 않고, 후일의 만남을 기약하거나 구하지도 않고, 떠나는 이의 행운을 빌어주지도 않는다. 서구의 표현들과는 궤를 달리 한다. 앤 린드버그도 이런 대비에 주목하여 썼다.

서양의 전통 속에서는 많든 적든 신이 이별 주위에 있으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영어 굿바이(goodbye)는 신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일 것이고 프랑스어 아듀(adieu)도 신 아래에서의 재회를 기약한다.

영어에서 흔히 쓰는 ‘farewell’의 ‘fare’는 ‘go’나 ‘travel’의 시어(詩語)라고 한다. ‘so long’도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보통 ‘헤어져 있는 긴 시간동안(so long as we are apart)’, ‘다시 만날 때까지의 긴 시간동안(so long till we meet again)’에 나오는 것과 같은 뒷부분이 생략된 표현이라고 본다. 다시 만나는 기약과 희망이 깃들어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체념 이상의 정서를 담아낸다. 대표가 바로 너무나 유명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그렇게 얘기하기도 않았겠지만, 본인이 보기 싫어 떠난다면 요즘 말로 쿨하게 보내드린다고 한다. 아니, 그 이상으로 가시는 길에 꽃잎까지 뿌려놓을 테니,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며 로맨틱한 모습까지 보인다. 혹시나 의심을 살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약해질까, 아니면 혹시나 상대방이 자신의 굳은 마음을 의심하지 않을까 더욱 강하게 말한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이별의 눈물로 어떤 강도 마르지 않게 하고, 꽃잎처럼 자신을 던져 가는 길에 던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절대 체념이 서구 기반 신의 도움 없이, 시인의 의지만으로 강력한 저항의 말과 몸짓이 되는 변증법적 마술을, 반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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