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프랑스혁명과 안동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프랑스혁명과 안동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7.08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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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은 프랑스혁명기념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를 보면 보스턴에서 잠금장치가 함께 있는 자전거의 비밀번호를 하루키에게 보스턴에 사는 친구가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비밀번호는 714에요. 프랑스혁명기념일이니까 외우기 쉽죠." 그만큼 프랑스혁명은 국가를 떠나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하루키는 역시나 그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고 헤맨다. 이도 하루키답다. 어쨌든 프랑스혁명을 기념한 말을 가지고 이번 글을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경험수집가의 여행>(앤드류 솔로몬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19) 51쪽에 이런 말이 나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1976년 운명하기까지 마오쩌둥(毛澤東) 아래 2인자 수상을 역임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72년에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 중국을 방문한 닉슨과 회담하며 한 말이란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시기를 보통 1789년으로 치고, 나폴레옹 시기까지 포함시켜도 대혁명은 워털루전투가 벌어진 1815년이면 막을 내린 것으로 본다. 그런데 150년이 훌쩍 지난 다음에도 성공 여부를 따지기에는 너무 이르다니, 중국의 역사 스케일을 보여주는 멋진 언사가 아니겠는가.

유머를 곁들인 통찰력 넘치는 코멘트를 많이 한 인물이지만, 저우언라이가 과연 저런 말까지 했을까 궁금했다. 책의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도 100%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정정하기에는 너무 재미있는 오해'라는 표현을 썼다. 앤드류 솔로몬이 주석에서 언급한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는 찾지 못했지만, 저우언라이가 닉슨과 만나서 저런 말을 했다는 회담에 배석했던 인사가 위의 말에 대하여 한 코멘트를 전하는 중국측 자료를 찾았다.

“I distinctly remember the exchange. There was a misunderstanding that was too delicious to invite correction.”

(내가 확실히 그 대화를 기억한다. 나중에 곡해되어 알려졌지만, 너무 멋진 표현이라 정정할 수 없었다.)

​위의 말이 실린 자료에 따르면 저우언라이가 '프랑스 혁명'이라고 한 건 1789년이 아니라 1968년의 68혁명을 가리켰다는 것이다. 닉슨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이 1972년 2월이었으니, 기껏해야 4년도 안 된 과거의 일은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긴 했다. 그런데 그걸 200년 전의 프랑스혁명으로까지 밀어버리니까, 중국인의 스케일과 장기적인 역사관이 눈앞의 선거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리는 서구 정치인들과 극적으로 비교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정말 그냥 1789년의 혁명을 지칭한 것이라 믿고 싶다.

스케일을 크게 하여 비유를 하면 이런 반전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동료가 있었다. 음식점에 가서 툭하면, ‘우리 고향은 내륙 지방이 되어서’라는 말을 버릇처럼 붙였다. 자기 고향인 안동에서는 같은 재료라도 다르게 해서 먹는다는 말이 이어졌다. 음식이 나오고 그가 같은 말을 꺼내놓고 나서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이봐요. 중국인들이 보기에 안동은 해안지방이오.”

잠깐 어리벙벙하게 있던 친구가 곧 박장대소를 하며, “맞아, 맞아요”라고 격하게 동의했다. 다음부터 음식점에서 내륙지방인 안동 운운하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시각과 관점을 달리 해서 보는 것에서 반전은 일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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