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골칫거리에서 업계 ‘큰손’으로, 대한민국 아이돌 팬덤 성장기

어른들의 골칫거리에서 업계 ‘큰손’으로, 대한민국 아이돌 팬덤 성장기

  • 유지영 기자
  • 승인 2019.07.23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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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이돌 그룹 역사는 대형 기획사에서 시작되었다. 잘 훈련된 아이돌 보이그룹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터보, HOT, 젝스키스, 엔알지, 신화, 지오디, 플라이투더스카이,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이름만 들어도 기라성 같은 아이돌 등장과 함께 ‘팬덤’이 자연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에게 ‘팬덤’은 골칫거리였다. 이들은 ‘사생팬’을 자처하며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내 가수’의 앨범 판매량 늘려주겠다고 한 장만 사도 될 씨디를 엄마 카드로 스무 장, 서른 장 사는 철부지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뉴스의 한 꼭지를 장식하며 어른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콘서트장에 가서 줄 서 있다 선생님께 머리끄덩이를 붙잡혀 끌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많은 어른들의 걱정과 비난에도 꿋꿋이 스스로의 취향을 잃지 않고 책받침에 오빠들의 얼굴을 코팅해서 학업의 의욕을 불태웠고, 콘서트 티켓을 위해 세뱃돈을 모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결국 업계의 큰손으로 성장해나간다.

 

SM 아이돌 '샤이니'의 공식 굿즈 샵 (출처: SM타운앤스토어)

콘서트 티켓, 앨범 뿐만 아니라 피규어, 응원봉, 캐리어, 우산, 방향제, 모자, 교통카드, 볼펜 등 ‘내 가수’의 이름이 새겨져 일상 생활에서 세련되게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팬들에게는 환영이다. 아이돌 굿즈 시장은 연 매출 1천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원조 아이돌, HOT의 2019 High five Of Teenagers 콘서트 티켓은 오픈 7분만에 전석 매진되었다고 알려진다. 현재 stubhub에서 거래 중인 VIP티켓(스테이지 바로 옆)가격은 150여만 원.
90년대 원조 아이돌, HOT의 2019 High five Of Teenagers 콘서트 티켓은 오픈 7분만에 전석 매진되었다고 알려진다. 현재 stubhub에서 거래 중인 VIP티켓(스테이지 바로 옆)가격은 150여만 원.

그러나 최근 연예기획사를 중심으로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아들이기만 하던 ‘팬덤’이 변하고 있다. 며칠 전 프로듀스 X 101(국민프로듀서가 방송에 데뷔할 보이그룹을 직접 선출하는 프로그램)에서 최종 탈락한 그룹 ‘바이나인’에 대한 팬들의 데뷔 청원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바이나인을 향한 물심양면 애정 공세와 함께, 자금력 및 빠른 행동력을 통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입증하고 있다. 지하철 광고를 위해 이들이 21일 새벽부터 모금한 금액은 3시간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고, 바이나인의 세계관(보이그룹에게 그들만의 컨셉이나 캐릭터, 나름의 서사를 부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앨범 자켓, 콘서트 응원봉, 굿즈 등을 직접 제작하고 공식 디자인을 부여하는 등 연예기획사에서 지원해주는 모든 것들을 직접 만들어나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모든 과정은 투표와 모금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심 하나로 강한 단합력을 보인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고, 스스로의 소신을 따르며 본인과 가치관이 맞는 이들과는 금세 연합하여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소신껏 만들어나가는 팬덤 문화의 새로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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