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른다고 하라.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른다고 하라.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7.29 08: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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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가장 말하기 힘든 세 마디는?”

‘The three hardest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를 묻는 이 질문이 <괴짜경제학(원제: Think Like a Freak)>(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징지식하우스 펴냄, 2015)의 2장 제목으로 나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회자되었던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답이 있다. 바로 ‘I love you.’라고 한다. 그래, 사랑을 고백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에서는 오죽하면 이상한 코를 가진 시라노 백작에게 부탁을 했다. 한국에서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마음 한 번 먹는데 사흘 이상이 걸리고, 어떤 자세로 말을 할까 이런 저런 생각하며 일주일 이 주일, 그러면서 눈치만 살피며 한 달 두 달 세 달을 보내곤 했단다.

두 명의 괴짜 저자들의 답은 다르다. 그들은 ‘I don’t know’라고 ‘나는 모릅니다’라고 인정하는 말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특히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에게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런 대표 집단이 의사로, 그들은 환자들에게 무지를 고백하는 것에 대해 아주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과 권위, 전문성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곤 한다"라고 <말센스>(셀레스트 헤들리 지음, 김성화 옮김, 스몰빅라이프 펴냄, 2019) 책에서는 말한다. 그러나 모의실험을 한 결과에 따르면 치료법을 잘 모르겠다고 한 내과의사 환자 중 상당수가 "더 신뢰가 갔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신뢰하고, 의견에 더욱 무게를 주는 반전의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말센스> 책에는 이런 사례도 나온다. 반품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미국 소비자들이 매년 반품하는 가전제품의 가격 액수가 약 15조 8,000억 원에 달한단다. 그런데 반품되는 제품의 85%는 하자가 없는 것들이다. 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게 제품설명서이다. 명료하지 못한 제품 설명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미국 가전 업계에서는 13조 5,000억 원 정도로 추산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과다 비용 발생 업계로 치는 미국 병원들도 그 정도에 해당하는 비용을 비효율적 의사소통 때문에 낭비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 제품의 설명서는 사실 1980년대에도 문제였다고 들었다. 기술자들이 자신들만의 전문용어를 그대로 열거하며 써놓고, 그래서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애프터서비스 기사들마저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제품이 제대로 사용되지도 고쳐지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벌어졌음에도 제대로 시정되지 못했다. 무론 그러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부로 구성된 모니터 요원에게 먼저 보이고, 수정하라고 하기도 하고,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를 투입하기도 헀으나, 전문성이 없는 무지의 상태로 들여보낸 이들이 어느새 ‘I don’t know’란 말을 하지 않고, 함께 아는 척을 하면서 더 꼬이고 어려운 단어가 들어간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My fair lady>란 영화에서 언어학자인 히긴스 박사는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날씨와 건강 얘기만 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현재는 기후 변화와 백신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편을 갈라서 싸우고 서로 아는 체를 하는가. 특정 부문에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문성을 주장할수록 의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면에서 무지의 인정이나 최소한 겸손이 가져올 반전을 이 시끄러운 세상에는 도모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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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2019-09-02 12:06:37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 대해서는 거꾸로 알고 계신 것 같아 기사 정정 요청 드립니다. "프랑스에서는 오죽하면 이상한 코를 가진 시라노 백작에게 부탁을 했다."고 하셨는데, 시라노 백작은 사랑고백 편지를 부탁을 받은 것이 아니고, 대신 써달라고 미남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코가 너무 큰 추남인 시라노는 사랑하는 록산에게 진심을 전하기엔 스스로의 외모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잘생기긴 했지만 멍청한 크리스티앙에게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합니다. 그것 때문에 오해는 계속되고, 록산은 전쟁 끝나고 다 늙어서 죽기 직전에야 연애편지의 주인공이 요양원에 가끔 말벗하러 와주는 시라노임을 깨닫게 됩니다. 문맥을 보면 거꾸로 알고 계신 듯 해서요. 이상 지나가던 연영과 졸업생이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