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자신이 만든 무기에 당하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자신이 만든 무기에 당하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8.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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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픽사베이

독일이 폴란드를 휩쓸고, 프랑스가 난공불락이라고 여기던 마지노선을 돌아서 파리까지 한 걸음에 점령했던 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우리에게 <속죄> 소설과 영화로, 그리고 지명과 같은 제목의 영화도 몇 년 전에 나와서 더욱 잘 알려진 도버해협 연안의 프랑스 항구 지역인 덩케르크에서 빈털터리로 온 40만이 되지 않는 병력이 육군의 전부였다. 독일 공군을 맡고 있던 히틀러 다음의 2인자로 꼽히던 헤르만 괴링(Herman Goering)은 공군만으로도 영국을 항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연일 런던을 중심으로 전투기의 호위를 받는 폭격기를 동원하여 폭탄을 퍼부었다. 거기에 맞서 성능에 뒤지는 전투기를 몰고, 경험에서 한참 뒤진 갓 소년티를 벗은 영국 조종사들이 독일의 역전의 조종사들과 맞서 싸웠다. 나중에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그들 영국 공군 조종사들의 활약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인류 전쟁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적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입은 적은 없었다.”

성능과 숫자와 경험에서의 열세를 영국 공군이 극복하고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한 두 사람이 있었다. 영국이 독일의 파상공세를 버틴 것뿐만 아니라 결국 연합군 측을 승리로 이끄는 데도 이 두 사람이 고안한 기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사람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며, <이미테이션>이라는 영화로도 그 인생이 알려진 앨런 튜링(Alan Turing)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봄(Bombe)이라는 독일의 에니그마가 만드는 암호를 푸는 암호해독기를 만들었다. 암호해독기로 독일의 유보트를 비롯한 선박들과 공군기의 움직임을 연합군은 먼저 알고 대책을 취할 수 있었다.

독일의 어떤 공습은 직역사령부 차원에서 불쑥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기습작전 시에도 영국 공군은 일찌감치 독일 공군기들이 떠서 영국 쪽으로 공격하러 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바로 당시 비행기 탐지기라고 했던 레이더(radar)라는 새로운 기기 덕분이었다. 그 레이더를 만든 이가, 앨런 튜링과 함께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두 명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되는 로버트 왓슨와트(Robert Watson-Watt)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물리학자이다. 로버트 왓슨와트가 2차대전 뒤에 캐나다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레이더건에 의해 속도위반으로 걸렸단다.

“천천히(Slow down)” 명령을 받은 왓슨와트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군.”(<회계의 세계사> 247쪽)

기원전 770년에서 221년의 550년 간에 이르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상앙(商鞅)을 든다. 법가(法家)의 대표로 꼽히는 그는 ‘상앙의 변법’이라는 이름으로 일상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법을 제정하여 시행했다. 그를 중용한 효공이 사망한 후에, 상앙의 법에 걸려 앙심을 품고 있던 귀족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고 도주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법률 규정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숙박을 할 수 없고 결국 잡힌다. 그 역시 왓슨와트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한때의 성공이 덫이 되어버리는 반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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