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20세기 (미국) 최고의 광고 - “Think Small“. 그리고 한국의 광고는?

[신인섭 칼럼] 20세기 (미국) 최고의 광고 - “Think Small“. 그리고 한국의 광고는?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19.08.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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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ge 표지
AdAge 표지 (1999년)

1999년의 일이었다. 21세기를 앞에 두고 시카고에서 발행되지만, 국제적 광고 전문 주간지 Advertising Age(이하 애드에이지)는 20세기 미국을 빛낸 창의적인 광고, 아이콘 그리고 광고인을 선정했다.

가장 뛰어난 광고로 뽑힌 것은 독일 자동차 폭스바겐(Volkswagen)의 "Think Small (작은 것이 꿈)“이었고 2위는 코카콜라, 3위는 말보로 담배였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광고는 독일자동차 광고였다.

폴크스바겐 Think Small, 코카콜라, 말보로 광고
폭스바겐 Think Small, 코카콜라, 말보로 광고

가장 뛰어난 아이콘은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비난의 대상이 된 말보로 담배의 Marlboro Man이었다. 2위가 맥도널드의 로널드, 3위는 졸리그린 자이언트(Jolly Green Giant).

그리고 DDB 광고회사 창립자 윌리엄 번벅 (William Bernbach. 1911-1982)은 최고의 광고인으로 뽑혔다. 2위의 광고인은 지금의 인터퍼블릭 그룹을 만든 맥켄에릭슨의 매리온 하퍼(Marion Harper)인데 그는 원래 시장조사 전문으로 동기조사, 광고 사전 테스트를 도입했으며 지금은 세계 광고계를 지배하고 있는 광고회사 그룹 아이디어를 창시한 사람이다. 3위는 레오 버넷 (Leo Burnet) 광고회사 창시자이며 카피라이터인 레오 버넷이다. 역설적인 것은 말보로 맨을 만들어 세계 최대의 담배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과 회사가 다름 아닌 레오 버넷이란 사실이다.

애드에이지의 20세기 말 특집을 보면 흥미있고 때로는 역설적이기도 한 일면이 있다. 독일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켜 두 번 다 패전한 나라다. 미국은 두 번 다 독일과 싸운 승전국이다. 특히 2차대전 때 독일은 600만 유대인을 학살했다. 물론 전후에 톡톡히 사과했고 죄값을 치렀다. 그런데 2차 대전 초기 점령한 파리에 들어간 히틀러 일행이 타고 간 폭스바겐을 유명하게 만든 광고회사는 DDB였고, 이 회사 사장은 유대계 미국인이다. 공적(公敵)이 된 담배 말보를 광고를 통해 세계 No. 1 브랜드로 만든 레오 버넷도 유대계 미국인이다.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몇 가지 사실과 미국이란 나라의 이름이다. 미국의 공식 명칭은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즉 미 합중국(合衆國)이다. 갖가지 민족, 인종, 국민이 모인 나라이다. 미국의 모토(문장. 紋章)은 라틴어인 E Pluribus Unum (Out of Many, One 또는 One Out Of Many)라 한다. 여럿이 뭉쳐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1776년에 독립했으니 아직 250년도 안 된 미국이란 나라에서 뽑은 20세기의 광고가 하필이면 독일 자동차라니 재미있는 일이다. 말보로 담배를 20세기 미국의 아이콘으로 뽑은 것 역시 흥미진진한 일이다.

20세기는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 및 "광고의 세기(Advertising Century)"라고 한다. 20세기 미국 잡지의 왕이라고 알려진 헨리 루스 (Henry Luce. 1898-1967)는 1941년 라이프 (Life) 잡지 기고문에서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라고 불렀다.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말이다.

이견이 없지는 않겠지만, 아마 사실일 것이다. 특히 광고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드에이지는 여기에 한 술 더해서 20세기를 “광고의 세기"라 했다. 헨리 루스는 중국 산동성에서 장로교 선교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에 TIME지를 시작으로, 포춘(Fortune), 라이프(LIFE),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등 디지털 시대에 빛을 잃고 있기는 하나 지금도 유명한 잡지를 창간했다.

루스는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그리고 중국 국민당 장개석(蔣介石. 장제스. 1887-1975) 총통을 좋아했다. 공산주의의 나라 모스크바와 북경에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을 때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뉴스는 이미 구문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단순한 음식물일 뿐 아니라 자유와 선택, 나아가서는 희망의 상징이며 아울러 미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이 두 음식물을 세계로 퍼뜨리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광고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고 에드에이지가 20세기를 광고의 세기라 부른 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루스의 “미국의 세기”란 말과 애드에이지의 “광고의 세기“란 말은 서로 얽혀 있다. 광고는 지난 50년 동안 기적적인 미국 경재 발전에 중요한 힘이 되었다. 아울러 광고는 좋든 궂든 미국 문화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견해가 마케팅과 브랜드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애드에이지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에는 캐나다의 저명한 학자 마샬 맥루한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어서 시사를 준다.

우리 시대의 광고야말로 그 시대의 모든 사회 활동을 매일 가장 풍부하고 충실하게 반영한다는 것을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이 발견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남의 이야기 이만한다. 2019년은 한국광고학회 창립 30주년이고 동시에 한국 PR협회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내년이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0년 이전만 해도 광고란 “쟁이”가 하는 일로 여겨 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다. 홍보를 보는 눈도 그리 곱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일본도 한국보다 크게 다를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에 남아 있는 말, “사농공상 그리고 광고대리점“이란 표현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물론 이런 말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광고와 홍보 없는 대전 엑스포, 88서울 올림픽, 여수 해양 박람회, 평창 동계올림픽을 상상할 수 있을까?

1886년 세장양행의 한국 최초 신문 광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해방 이후 70여넌 기간만이라도 뛰어난 광고, 훌륭한 아이콘 그리고 이런 광고를 만들어 온 사람들을 찾아 금수저는 주지 못할지라도 그런 우리 선배들을 발굴할 필요는 없을까? (남 대접이 제 대접이라고 누군가가 시작해야 할 일이다.)

사실은 윤석태 감독이 전력을 투구해 2006년에 개관했던 경주대학 부속 광고박물관이 이런 시도를 했다. 그러나 이제 이 일은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길어서 생략한다. 다만 이 일은 한국 광고계의 수치이다. 윤감독의 박물관은 한국 근,현대 광고 역사를 담고 있었다.

칸느국제광고제에 가는 것도 좋지만 세계 10위권 광고비 보유국이 되기까지 걸어온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때로는 광고에 대한 인식에서 한국은 아직 갑오경장 이전에 시대인가 하는 자학적인 착각이 생긴다. 그리고 언제까지 남이 한 일만 쳐다 보면서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방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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