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혜칼럼] 북간도 명동촌 일송정

[묵혜칼럼] 북간도 명동촌 일송정

  • 김민남
  • 승인 2019.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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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암산 정상 길목에 조성되어 있는 일송정 비 전경 (출처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중국 비암산 정상 길목에 조성되어 있는 일송정 비 전경 (출처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1994년 8월15일, 운좋게도 중국 길림성 쪽에서 백두산 천지를 오른 적이 있다. '고구려문화 국제 학술세미나'가 옛 고구려 도읍지였던 압록강변 지안(集安)에서 94년 8월에 사흘 간 열렸다. 그 세미나에는 한국 역사학자들을 비롯해서 북한, 중국, 대만, 일본 등 여러 나라 사학자들이 자리를 가득 매웠다. 세미나에는 북한의 김일성대학 80대 노(老) 국사학자 박시형 교수가 참석, 눈길을 끌었다. 특히 주목된 것은 주제발표 후에 이어진 열띤 토론이었다. 중국 산동성 어느 대학에서 온 중국인 교수가 "고구려라는 나라는 아예 없었다. 중국 동북 변방에 고구려라는 한 소수 민족이 있었을 뿐이다. 고구려 문화는 중국의 둥베이 지방(동북지방 東北地方) 한 소수 민족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목청을 높혀 무례하게 '강변'했다. 중국이 이웃을 대하는 민낯을 드러낸 순간이다.

참석자 모두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구려 문화를 논하는 자리이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그때 박시형 교수가 나섰다. "고구려는 엄연히 존재한 나라다. 앞서 중국 교수의 주장은 어느 사서(史書)에도 기록이 없다."고 점잖게 반박했다. 참석한 우리 한국 교수들도 가세했다. 을지문덕 장군이 중국 수나라를 꺾은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의 위대한 역사적 승리다.

그 다음 날 지안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는 거리에 고구려 벽화가 그려진 무덤을 답사했다. 고구려 문화는 거기에 너무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중국 학자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어 국내성, 장군총, 광개토대욍 시적비 등을 둘러보았다.

우리들 학술 여행은 베이징, 랴오닝성 선양시(沈陽市), 무순, 화룡(和龍), 이도구, 삼도구, 창바이, 지안 학술회의를 거쳐 중국 쪽 백두산(중국에서는 장백산) 천지와 온천, 지린성(길림성 吉林省) 옌벤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의 성도 하얼빈 역사, 창춘(장춘 長春)과 발해박물관 등 동북 3성을 둘러보는 먼 길이었다. 지린성 옌벤에서는 용정, 청산리 대첩장, 옌벤과학기술대학을 찾았다.

용정시(龍井市)에서 명동촌의 해란강 건너 비암산 줄기 야트막한 산봉우리에 있는 일송정(一松亭)을 찾았다. 중국 당국의 간섭이 심해 일송정과 간도지방 독립운동 유적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일송정 지붕 한쪽이 내려앉아 있었다. 용정의 우리 동포 얘기로는 중국 사람들이 파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하긴 중국과 관계가 좋았고 북간도와 가까운 북한에서도 그런 독립운동 전적지 등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일송정과 해란강, 용두레 우물가(용정 龍井), 청산리 대첩지 입구에 세워진 손바닥 크기의 작은 안내 표지판 앞에서는 숙연한 자세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고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독립군들, 1870년대 이후 황무지였던 간도 지역을 개척하며 고달픈 삶을 살았던 200만 가까운 북간도 등 중국 동포들 앞에 서면 한국인이면 누구나 '나는 도대체 무얼하며 살아왔는가' 하고 자문하게 될 거 같다.

한때 제2의 애국가라 불릴 만큼 국민들이 애창했던 가곡 '선구자', 지금은 작사-작곡가들이 친일 작사가, 친일 작곡가로 찍히면서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노래도 잘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일송정과 용정중학교 교문 안쪽 우물가의 윤동주 시비(詩碑), 청산리 전적지 맞은 편 일본군이 불태운 마을 터와 독립군 그 '선구자'들이 숨차게 말달리던 그 뒷편 산줄기들을 보면 나라 빼앗긴 조상들의 수많은 애환과 비통함, 한반도와 만주지방을 강점한 제국주의 일본의 강탈적 식민지배와 무자비가 절로 떠오르게 된다.

요즘 새삼 일고 있는 반일(反日) 운동이 일본제품 불매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74년이 흘렀다. 어느 100세 노교수는 이제 반일은 진정한 극일(克日)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념으로 싸울 처지는 이미 넘어섰다.

극일은 반일 프레임이나 '불매'의 수준이 아니다. 경제, 국방, 외교 등에 걸친 국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의연한 자세와 마음가짐이 그 핵심이라고 하겠다. 정치 지도자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독립운동에 목숨음 바친 분들과 그분들의 활동 바탕이 된 해외 동포들에게 존경과 함께 늘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항심'(恒心)을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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