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들리는 혼잣말, 저격글

다 들리는 혼잣말, 저격글

  • 유지영 기자
  • 승인 2019.09.06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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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구혜선 씨와 안재현 씨의 파경과정에서 ‘저격글’이라는 단어가 유달리 눈에 띈다. 두 배우의 SNS계정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잘했다 못했다 훈수로 가득하고, 미디어는 SNS와 메시지 서비스의 대화를 분석하며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온라인의 ‘저격글’이란 당사자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도록 자신의 SNS에서 상대를 특정하여  전쟁에서 몰래 누군가를 노리고 겨냥하여 저격하듯 욕이나 비아냥, 인신 공격용 글을 작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 당사자는 그 말의 속뜻을 아주 쉽게 눈치챈다. 공격받은 사람만 아는, 손에 피 안 묻히는 공격인 셈이다.

온라인을 활용한 저격글은 흔히 사이버 불링의 한 가지 방법으로 활용된다. 모욕죄 성립 요건인 ‘특정성(다른 여러사람이 그 ID나 이니셜만으로도 그 모욕의 대상자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 ‘모욕성(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더라도, 외부적 명예를 훼손할 만한 추상적인 가치판단이나 경멸적인 감정의 표현을 표시하는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된 경우)’, ‘공연성(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경우, 다수의 사람들이 모욕을 당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야 함)’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은 지난 7월 청소년들이 인스타그램을 사이버불링에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댓글 취소’ 기능(댓글을 작성하고 업로드하기 전에 ‘정말로 이 글을 올리기를 원합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댓글 업로드에 약간의 지체 시간을 주어 작성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과 ‘제한하기’ 기능(이용자들이 다른 계정을 팔로우하는 상태에서도 원하지 않는 소통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며, 제한된 사람이 단 댓글을 삭제하거나 남겨둘 수 있는 것)로 사용자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업데이트한 바 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의 AI가 은근한 비유나 인용, 초성이나 별명 등을 활용한 ‘저격글’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루종일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알람을 켜두며 디지털 세계의 페르소나를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우리들이 ‘내 얘기’를 하는 은근한 저격 메시지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두의 말이 들리고 누구에게나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세상이다. 모든 촉각이 온 세계를 향해 뻗어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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