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효과적인 역접 사용법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효과적인 역접 사용법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9.23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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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며 제국 영국의 기초를 닦았다는 역사의 평을 듣는 엘리자베스 1세의 일생일대의 연설로 두 건이 꼽힌다. 첫 번째는 초강대국인 스페인과의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흐를 때, 일전을 위하여 결집한 영국 군대를 향한 연설이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총사령관이나 다름없는 왕이 여성이라 전쟁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힘없고 연약한 여자의 몸을 가진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왕의 심장을 가졌으며 영국의 왕위도 가졌다.”

이 대목을 들은 군인들의 환호가 아주 길고 우렁차게 이어져서 여왕이 계속 연설할 수 있도록 장교들이 말을 타고 병사들 사이를 다니면서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어 13년 후에 엘리자베스는 이번에는 자신을 불신하는 태도를 스스럼없이 비추는 의회 의원들을 향한 연설이었다. 이런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에 따르면 이 연설 후에 많은 의원들이 마음을 바꿔 눈물을 흘리며 의회를 떠났다고 한다.

“그대들이 지금껏 모셔온, 앞으로 모실 나보다 더 위대하고 현명한 왕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 나보다 더 그대들을 사랑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2대 연설의 공통점이 있다. 역접 접속사로 반전을 이끌어냈다. 역접 이전에는 청중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인정했다. 힘없고 연약한 여자라고 했고, 이전에 모신 이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낮춰보는 게 타당할 수 있다고 했다. 청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처음부터 정면으로 부딪혀서는 그 방어 태세만 더욱 강하게 갖추도록 만들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끌려가기 십상이다. 부정적인 면이 있어도 그것을 인정한 연후에 반전을 꾀해야만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감정도 불러일으키고, 본인의 솔직함도 어필할 수 있다. 그런 반전 접근법의 효과를 법정, 정치, 마케팅의 세 가지 방면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1) 법정에서 상대방 변호사가 지적하기 전에 자기 쪽 문제점을 먼저 시인하는 변호사가 재판부에 더 정직하게보이며 더 많이 이긴다.

2) 정치판의 선거에서 상대방을 긍정하는 말로 유세를 시작하는 후보자가 더 높은 신뢰와 표심을 얻는다.

3) 광고에서 강점을 강조하기 전에 약점을 인정하는 업체들이 종종 판매가 크게 증가한다.

이런 문법에 충실했던 전설의 광고가 바로 렌트카 애비스(AVIS)의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합니다’ 캠페인이었다. 그런데 호평 일색인 이 광고는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다. 허츠(Hertz)라는 절대강자 밑에서 아웅다웅 싸우던 고만고만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확고부동한 2위로 애비스를 끌어올리는 정도에 그쳤다. 허츠는 '그래, 우리는 No.1이야. 그래서 2위가 할 수 없는 더욱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하는 도발적인 자세에, 엄청난 물량공세로 맞섰다. 그 물량공세에 애비스 광고의 신선함이 매몰되다시피 했다. 예술적 측면에서 광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둔 건 허츠라는 게 이 광고 이면의 또 하나의 반전이었다.

AVIS 광고
Hertz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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