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먼저 손을 내밀며 만드는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먼저 손을 내밀며 만드는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9.30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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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호스-성공의 표준 공식을 깨는 비범한 승자들의 원칙>(토드 로즈·오기 오가스 지음,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19)에는 부제처럼 정해진 궤도와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의 내적인 동기를 따라서 성공을 일군 이들의 스토리가 많이 나온다. 그런 인물들 중 보스턴 버클리 음대 교수이자 음악지각인지연구소 소장이라는 수잔 로저스(Susan Rogers)는 인생의 여러 굴곡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반전을 이룬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수잔은 14세 때 어머니를 잃었고, 해충박멸 일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세 남동생을 건사하며 가사를 전담하다시피하며 학교를 다녔다. 가뜩이나 힘든 집안일에 아버지가 재혼하며 가족 간의 갈등과 싸움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집에서 도망쳐야겠다는 욕구가 컸던 수잔은 고교를 중퇴하고 21세의 남자친구와 결혼하며 집을 떠났다. 그런데 남편은 의처증이 심하고, 모든 것에 질투를 느끼며 눈이 뒤집혀 폭력까지 예사로 휘두르는 인물이었다.

유일하게 수잔이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건 음악이었다. 특히 소울 음악을 좋아했는데, 남편은 그마저도 질투하여 레코드판을 숨기고 박살내기 일쑤였다. 어느 날 수잔이 벼르고 별러 직장 동료들과 함께 LA포럼에서 열린 레드 제플린의 콘서트에 갔다. 남편에게 10시 30분까지 귀가한다고 약속하며 겨우 허락을 받아서 갔다. 원래 시간보다 늦게 9시에 시작한 공연은 10시가 되면서 수잔을 감격시킬 정도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늦게 들어갔을 때 겪게 될 남편의 주먹이 더 무서웠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면서 수잔은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맹세를 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라이브 사운드를 믹싱하겠다.’

당시 수잔은 음악을 좋아할 뿐 악기나 음악기기를 다뤄본 적도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뒤의 제작진 중에 음향기사란 직종이 웬지 자신에게 맞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불쑥 나온 다짐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콘서트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록스타를 들어서 저질의 성적인 농담을 크게 지껄였을 때, 수잔은 바로 지갑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 다시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음향기사가 될 경로를 알아보았으나 수잔의 교육 수준이나 소득으로는 불가능했다. 대신 수잔은 음향기사 교욱학원의 접수계에 일자리를 얻었다. 우연히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지 않지만 중요한 정비기사란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접수직원으로 일하며 독학하여 LA에 있는 레코드사의 정비기사로 결국 취업을 했다.

1978년 이래 그녀가 가장 관심 있어 한 음악인은 프린스였다. 1983년에 수잔의 친구가 프린스가 정비기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그런데 음악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LA와는 완전 동떨어진 미국 중부의 미니애폴리스의 프린스 집으로 가서 근무를 하는 조건이라 지원자들이 없어서 수잔에게까지 기회가 왔던 것이다. 미니애폴리스의 프린스 저택의 지하실에서 장비를 설치하고 정비하는 수잔이 프린스를 볼 기회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불쑥 프린스가 지하실로 와서 기술적 문제 몇 가지를 묻고는 대답을 닫자마자 위층으로 올라가려 발걸음을 떼려 할 때 수잔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수잔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정비기사로 일하려고 왔어요.” 잠깐 멍한 표정으로 수잔을 바라보던 프린스가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프린스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수잔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음악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곳에 가긴 했지만 그의 음악이 잘되기 위해서는 제 역할도 중요해요. 제 역할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었어요. 다행히도 그는 그 점을 인정했고 함께 작업하는 동안 저를 존중해줬어요.”

이후 프린스와 수잔은 음악적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는 동료가 되었다. 프린스는 음향 부분에까지 수잔에게 요청했고, 새로운 앨범의 녹음을 그녀가 지휘하도록 했다. 그게 바로 불후의 명반으로 인정받는 <퍼플 레인>이었다. 앨범 발매 이후 순회공연에 나선 프린스의 믹싱 작업을 수잔이 맡아서 했다. 공연지 중에는 LA포럼도 들어 있었다.

무조건 광고주 고객에게는 수그리고 들어가야만 한다는 광고회사 사람들이 많다. 표준 공식처럼 되어 있는 그것을 깨는 반전의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 음악계의 슈퍼스타와 정비기사의 천양지차의 계급 관계를 수잔은 먼저 손을 내밀고 소개를 하면서 깼다. 그리고 그의 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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