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시선] '막장 드라마'가 부른 지상파의 '마지막 장'

[디지털시대의 시선] '막장 드라마'가 부른 지상파의 '마지막 장'

  • 곽팀장 칼럼리스트
  • 승인 2019.10.0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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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이야기' 내주고 유튜브에 '웃음' 뺏기다
출처 픽사베이

지상파에도 '명품 드라마'가 있었지

얼마 전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TV가 틀어져 있어 일일드라마를 보게 된 적이 있습니다. 채널과 작품 이름은 잘 모르지만 주인공들이 서로 언성이 높아지며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가 꽤 익숙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갈등관계도 고부갈등이어서 '아, 그냥 지상파 드라마인가 보다' 했죠.

예전만큼 지상파 채널을 잘 보게 되지는 않지만 과거의 많은 명품 드라마들을 기억합니다. 90년대생은 기억할만한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과 7080에게 사랑받은 <모래시계>와 <첫사랑>, 사극에서는 궁예를 탄생시킨 <태조 왕건>, 이영애의 <대장금>, 전광렬의 <허준>까지 참 많습니다. 매 해년마다 걸출한 작품들을 탄생시키면서 지상파는 한때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무한도전'이 토요일 저녁 예능 전도사였다면 전 국민을 TV 앞에 앉힌 일등공신은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는 대중들의 삶과 호흡하고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큰 감동과 메시지를 선사했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드라마이다 보니 사랑 이야기와 집안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훈훈한 해피엔딩이 줄어드는 게, 먹고살기는 좋아졌지만 인심은 각박해졌거든요. 이전에는 그래도 '드라마'였지만, 점점 더 현실 같은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티 드라마로 변해갑니다. 그동안 극적인 '갈등'과 '반전' 요소가 이야기를 결말로 풀어나가기 위한 '나들목' 역할이었다면 이후에는 갈등에 갈등의 연속, 반전에 반전의 연속으로 설정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되어갔습니다.

 

막장 드라마는 어떻게 '장르'가 되었나

결국 '막장 드라마'가 탄생합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내의 유혹'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장서희 배우가 눈가에 점 하나를 찍고 다른 인물로 바꾼 연출은 뜨거운 여론을 만들기도 했었죠. 열혈 시청자들은 통쾌하다고 했지만 한 편으로는 시청자 우롱 아니냐는 이야기도 분분했습니다. <아내의 유혹>이 새로운 장을 연 이후로 마치 막장 드라마는 하나의 '장르'처럼 안착하게 되었고 아침드라마,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할 것 없이 '자극'과 '억지 설정'에만 매몰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상파가 막장 드라마에 매몰되는 동안 종합편성채널은 새로운 소재의 명품 드라마를 쏟아냅니다. tvN의 <시그널>, <미생>, <도깨비>라든지 JTBC의 <SKY 캐슬>이 생각납니다. 대중들은 참신하면서도 주제 선정에 분명한 컬러가 있는 작품들에 열광했고 이야기만큼 영상미도 큰 찬사를 받았죠. 한 쪽에서 새로운 성공의 신화가 쓰이면서 다른 한쪽이었던 지상파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청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 항해하는 동안 지상파는 같은 성공 공식을 고집했던 거죠. 헛발질을 반복하는 동안 기회의 땅을 찾아 지상파의 핵심인력도 이탈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화성침공'과 지구인 연합

출처 https://unsplash.com/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 2,3년 길게는 5년 동안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디지털입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영상 콘텐츠 시장을 점유했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넷플릭스, 웹드라마와 시의성 높은 영상은 유튜브에서 소비하는 형식입니다. 넷플릭스와 왓챠라는 이름은 더 이상 낯설지 않으며 콘텐츠 공룡 '디즈니 플러스'도 곧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드라마 시장은 '틀면 나오던 시대'를 지나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단순히 '이야기' 자체를 소비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취향'이 세분화된 시점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리모컨을 돌려 취향을 찾는 일은 시청자가 아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대신합니다.

서로 앙숙인 국가라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지구인은 모두 한 편으로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얼마 전 지상파 3사는 기존 OTT 서비스 'Pooq'과 'Oksusu'를 통합해 '웨이브'를 론칭했습니다. 또 CJ E&M과 JTBC는 기존 'Tving' 서비스를 개편해 새로운 OTT 합작법인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미디어 콘텐츠 시장은 글로벌 OTT와 토종 OTT의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또다시 '한국판' 넷플릭스를 이야기합니다. 당분간은 기존 이용 고객이 있어 순항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정작 강조되어야 할 독자적인 콘텐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시피 하는 점은 아쉽습니다. 총 3000억 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 중 1천억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직 청사진일 뿐 재원을 출자한 지상파 3사가 담는 그릇만 바꾼다고 음식 맛이 바뀔지는 의문입니다. 아직 콘텐츠로서 내세울 것이 없다 보니 나오는 말이 '콘텐츠 독점'입니다. 지상파 채널에서 방송된 특정 콘텐츠를 자신의 플랫폼에서만 송출해주겠다는 뜻인데, '독자적 콘텐츠'가 아닌 '콘텐츠 독점성'이 과연 근본적인 콘텐츠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중의 관심은 '살아남는 플랫폼' 아닌 '살아있는 콘텐츠'

출처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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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궁금한 것은 어떤 OTT 서비스가 살아남을까가 아닙니다. 어떤 재미 있는 콘텐츠를 보여줄 것인지가 궁금한 거죠. 사람들이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콘텐츠 이민'을 떠나야 한 이유가 뭔가요? 지상파 막장 드라마가 한때라도 대중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기존의 것과 '달랐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대중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새로움 속에서도 삶의 온도와 감동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같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좋은 작품을 사랑하고 그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시대의 요구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 작품 대신 우려먹기식 막장 드라마로 일관했던 지상파가 뒤늦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뛰어든 OTT 서비스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지, 한 편에서는 콘텐츠 이권을 지키고자 유튜브에서는 콘텐츠 클립을 배제하다가 최근에는 유튜브가 떠오르니 옛날 방송을 풀어 수익성을 도모하는 모습에서 단기적 계산에는 능해도 대중의 마음을 읽으려는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는 장서희 배우가 얼굴에 점 하나를 찍어 '구은재'에서 '민소희'가 됩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로 '남'이 되고, '남'은 다시 '님'이 되려는 디지털 시대의 시선이었습니다.

 


곽팀장 디지털마케팅 에이전시 비스킷플래닛 팀장 / 현직 9년차 디지털 마케터 / 마케팅 칼럼니스트

브런치 http://brunch.co.kr/@kty0613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ALJHclOi2SioUH2aVlv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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