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10.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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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강북과 강남에서 대규모 시위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볓 백만씩 모이다 보니 어느 쪽이건 잘 아는 이들이 몇몇 참석하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심각한 세(勢) 대결로 인식하여,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열을 올리기도 한다. 경조사 자리에서 양쪽 진영의 집회가 화제에 올랐다. 한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내 뜻을 전달하면서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저항한다는 말에 인도의 독립운동가인 마하트마 간디의 무저항주의가 떠오른다. 간디의 사상과 실행 방식을 두고 ‘무저항 비폭력’을 얘기하고, 그래서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할 때 평화주의자라고 한다. 그런데 그의 ‘무저항 비폭력’적인 활동의 뒤는 거의 항상 엄청난 소요와 폭력이 뒤따랐다.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고 있을 때, 그의 무저항적인 저항에 더 가혹한 진압이 이어졌고, ‘비폭력’을 부르짖던 간디는 이차대전에 영국과 타협하여 무려 250만 명 이상의 인도인이 자원병 형태로 참전하는 길을 텄다. 자신이 총탄에 의하여 숨을 거두게 될 때 인도는 이미 역사상 최악 수준의 살상을 동반한 종교 분쟁에 휩싸여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이후 수차례 국지전이 벌어졌고, 지금도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간디의 평화 커뮤니케이션의 역사 현장에서의 반전이다.

4년 전인 2015년 삼성카드 광고에서 절절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모델이 외친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너무나도 많은 것에 휘둘려 다니는 현대인의 바람을 대변해준 한 줄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여러 학원으로 숨 쉴 틈 없이 조리돌림을 당하고, 대학에 들어오는 순간에 취업을 위한 활동에 내몰린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자기계발이라는 광풍이 계속 휘몰아친다. 인생의 진로와 관계없이도, 물건 하나 사는 데도 비슷한 상품들이 너무나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고, 사는 방식도 선택을 하니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열망에 열광한다.

두 번째 줄에서 반전이 온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라는 이들이 실상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가 없이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이들은 행동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바쁘지만 실제는 가장 한가로운 이들일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반전이자 클라이맥스가 나온다.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그냥 안하는 것이 아니라 ‘격렬하게’ 안함으로써, 나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무행동의 행동’을 선명하게 표현한다. 그 표현에 대한 보상을 받고 격렬하게 기뻐하며 광고는 마무리한다.

집회에 나가지 않고,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선배의 무표현과 무행동의 커뮤니케이션이 효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성량 대결과 숫자놀음의 양상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반전의 씨앗을 품고 있는 고요함의 의미를 간파하는 그런 사회와 정치가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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