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이야기] 외견 상 잘되는 것 같아 보이는 스타트업의 성장통

[스타트업 이야기] 외견 상 잘되는 것 같아 보이는 스타트업의 성장통

  • 정재호
  • 승인 2019.10.15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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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투자 검토할 때는, 모든 팀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되길 바라기도 하고, 그 중 오래 지켜본 몇 팀은 투자 승인이 날 때 심장이 찌릿하며 유별나게 큰 기대를 하기도 한다. 반면, 투자 후 불과 1년 이내, 마음속으로 성장 기대를 접는 경우도 생긴다. “유별나게 큰 기대”를 한 팀이 가장 먼저 성장이 꺾이는 경우, 그 회사의 대표와 임직원, 투자자 모두 소위 “멘붕”에 빠지게 된다. 각광 받던 그 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 투자를 비교적 쉽게 받은 회사의 위기

첫 투자를 어떻게 받으면 좋을지 IR 코칭과 강연 할 때 항상 강조하는 사항이 있는데, 투자자의 기대에 맞게, 돈을 제대로 쓸 준비를 했는지 여부이다. 왜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그 연료로 어디까지, 어떤 속도로 날아갈지 고민이 부족했던 팀은, 투자금이 들어오는 순간 위기가 시작된다. 투자 유치 신문 기사는 나갔고, 주변의 부러움과 축하도 받았는데, 경쟁사도 우리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투자 전에 좋은 성과를 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전쟁이 시작된다. 급한 나머지 대규모 채용, 평소 하고 싶었던 개발 및 마케팅 활동의 확대(즉, 전선의 확장) 등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속도로 일을 벌인다. 양적 성장 지표를 빨리 만들면, 첫 투자 받을 때처럼 후속 투자가 되리란 막연한 기대도 있을 것이다.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질끈 밟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적절한 시점에 변속하기, 네비게이션을 보되 현재 상황에 맞게 운전 방향 설정하기는 학습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투자없이 혼자 터벅터벅 걸으며 독자적인 성장을 하는 회사라면, 스스로 시행착오 인정하고 reset하기 쉬운 구조인데, 이해관계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방향 전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 투자자와 상의하며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유니콘 후보로 여겨지는 중고거래 앱 스타트업이 있는데, 초기 스타트업 대표 한 명과 조언 얻으러 가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연쇄 창업자로서 경력도 훌륭하고, 수십억원의 투자 유치가 마무리된 후 였는데, 예상 보다 작은 수의 직원들과 일을 하고 있었다. 확장을 왜 안 하냐는 질문에, 아직 몇 가지 가설 검증이 덜 되었고, 결과만 제대로 나오면 채용하고 사무실도 옮길 거라고 했다. 한마디로, 창업자 스스로 정한 마일스톤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안전하게 속도 조절 중이라는 얘기였다. 몇 달 후, 당시 미팅에서 얘기했던 본 궤도(몇 가지 지표. KPI)에 다다랐는지 대규모 공개채용을 하고 생각했던 여러가지 서비스를 런칭하는 속도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Capital Efficiency”라는 단어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IR 자료에서 본 적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humble, hungry한 자세로, 돈을 아껴 쓰며 성장한다”라는 문장으로 받아들였다. 쓸 때는 확실히 써서 성과를 내고, 그게 아닌 경우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얘기이다.

다양한 지원 사업에 의한 착시

매우 조심스러운 얘기이다. 각양각색의 기업이,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며 활동하는 시장이라, 일반론으로 얘기하기 어렵다. 반면, 고객의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제품이 제대로 나온 것 같지도 않은데, 몇 년 째 기업이 유지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정부와 민간 가릴 것 없이, 스타트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확대된 것은 고무적이나, 다양한 주체가 다소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초기 기업을 지원하는 터라, 최소한의 요건을 어떻게 하건 맞추고, 방법만 잘 터득(?)하면 6개월 정도의 생명 연장이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회사는 돈을 못 벌고, 분명 위기가 온 상황인데,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심지어 월급도 나온다.

지원 프로그램 심사를 가보면, 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팀이 몇 달 새 전혀 바뀌지 않은 내용으로 또 발표하고 있는 모습도 자주 목격한다. 스타트업에게 한 달은 1년과 같은데, 발표하는 지표에서 성장의 모습이 안 보인다면 위기가 온 것이다.

어떻게든 버티며 기회를 찾는 것을 나쁘게 말하긴 어렵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스타트업도,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핵심 기술도 개발했고, 채용도 하고, 해외 시장 탐색도 하고 있다. 반면,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원 사업 자체가 회사의 주요 경영 계획이 된다면 곤란하다.

가까운 미래에, 생태계의 다양한 지원 주체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선별하는 추세로 바뀔 것이다. 잘되는 팀(고객에게 주는 가치가 명확한 팀)에게는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산업별, 성장 단계별 특화 프로그램이 강조되는 추세라서, 별다른 progress없이 주로 세금이 재원인 지원 사업의 대상이 되긴 어려워 질 것이다. 경쟁력없는 사업은 시장의 판단에 의해 빨리 도태되도록 하고, 창업팀의 재기를 지원하자는 것이 큰 방향이 될 것이다.

성장통이 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박종윤 저)”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쇼핑몰 분야에서 필드 경험이 매우 많은 분이 쓴 책인데, 매 챕터 마다 반복적으로 고객 얘기를 한다. 책의 중반부를 지날 때면, ‘또 고객이 답이다라는 얘기겠지?’ 예상이 될 정도인데, 계속 곱씹어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이책의 매력이다.

내 운명은 투자자나 정부 지원사업이 정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투자도, 지원사업도, 결국 고객 발굴 잘하고, 가치 입증해서 수익을 내라는 의미로 주는 것이다. 창업할 때 목적도 명확히 있을 것이고, 아마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눠봐도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이 명확히 있을 텐데,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당장의 생존에 급급하다 보니 잠시 방향을 잃게 된 것이다. 책에서 얘기 한 것처럼, 방향을 다시 리마인드 하고, “우리를 구원할 고객”에게 집중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사업으로는 도저히 가치 창출이 어렵다면, 투자나 지원 사업은 잊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 더 낫다. 애매한 상황에서 몸집 만 커지면, 성장통이 더 심각해 질 수 밖에 없을 테니.

 


정재호 Company B 파트너

스타트업 COO이자 엔젤투자자, 고려대 경영대 스타트업연구원의 예비창업팀 육성 교수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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