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섀클턴 일가가 함께 한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섀클턴 일가가 함께 한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10.28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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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섀클턴
어니스트 섀클턴 출처 wikimedia commons

“위험천만한 여행에 참가할 사람 모집. 임금은 많지 않음. 혹독한 추위, 수개월 계속되는 칠흑 같은 어둠,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험, 그리고 무사 귀환이 의심스러운 여행임. 물론 성공할 경우에는 커다란 명예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음.”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영국의 탐험가가 있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라는 책과 <인듀어런스(The Endurance)>라는 사진집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세계 최초의 남극대륙 종단탐험에 나선 그는 출발지점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얼음조각에 2년 가까이 갇혀 있게 된다. 27명의 대원들을 조직하고 격려하여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모두 무사히 데리고 귀환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리더십의 귀감으로 자기계발 강사들이 즐겨 인용하는 인물이 된다.

서두에 나온 인용문은 그가 탐험을 떠날 대원을 모집하며 낸 구인광고이다. 달콤하고 화려한 것을 보장하는 광고와는 반대로 접근한다. 지원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도 쫓을 것만 같다. 이 구인광고는 단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이야기와 같은 흐름이 있다. 제품광고처럼 생각하고 뜯어보자.

맨 처음은 이 광고를 하는 목적, 팔려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여행’이라고 한다. 이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반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보통의 구인광고와 마찬가지로 ‘임금’을 얘기하는데, 높다면서 사람을 꾀는 게 아니라, 많지 않다고 솔직하다면 솔직하고, 괜시리 그런 얘기를 하는 듯 엉뚱하게 까발린다. ‘업계 최고대우’ 같은 흔히 쓰이는 표현들과는 정반대이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이 ‘아니, 이 친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하면서 더 깊숙이 끌려 들어갔다.

점입가경이라고 사람을 쫓아내는 듯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춥고, 어둡고, 위험해서 무사히 돌아올 지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여행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살짝 방향을 틀어, ‘성공할 경우에는 커다란 명예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살짝이지만 앞서 한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있어서 급격한 반전의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여운을 남긴다. 마치 ‘그렇지만 너무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라 당신 같은 사람은 못할 거야’ 식으로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하다.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운운할 때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轉’과 ‘結’이 함축적으로 함께 이루어진다. 장밋빛 환상을 심어준 광고는 기대수준을 높여서 실제 상황에서 곧바로 실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2년간 얼음섬들 사이에 묶여서도 끝내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 광고에 담겨져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엄청난 고생을 할 거라고 이미 알고 감수할 태세를 갖추고 합류들 했을 테니까. 실제로 그들은 탐험 자체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무사히 귀환하여 명예와 인정을 받았다. 사람들이 알아준 것보다, 자신의 결정과 성취에 스스로들 자부심을 갖지 않았을까.

2017년 4월 현대자동차는 섀클턴의 증손자가 산타페 차량을 타고 남극 횡단을 이루는 장면을 유튜브와 TV CF로 방영했다. 당시까지 유튜브에 방영된 자동차 광고 역사상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단다. 100년 넘어 실현된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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