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제한은 반전을 위한 혜택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제한은 반전을 위한 혜택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11.04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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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안구건조증이 심해졌다. 안과 의사가 인공눈물을 1시간에 한 번씩, 컴퓨터 작업하면 30분에 한 번씩 넣는 방법 외에는 치유방법이 없다고 했다. 2주 정도 쓸 수 있는 인공눈물 분량을 쓴 처방전을 줬다. 컴퓨터 작업에 자료 읽는 시간이 깨어 있는 동안 대부분을 차지하니, 인공눈물의 사용량이 꽤 많았다. 양에 비하여 가격은 비싸서 조금씩 사서 쓰다가, 어느 친구를 통해 싸게 살 수 있는 통로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1백통을 사다 놓고 쓰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이전에는 1회용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조심스럽게 눈에 떨어트려 두 차례에 걸쳐 나누어 썼다. 싸게 잔뜩 사서 쌓아놓고 쓰면서는, 인공눈물을 넣는데 자꾸 눈 밖으로 흐르는 경우가 잦아졌다. 여유분이 많다고 아무렇게나 인공눈물을 넣으려 하니 빗나가버린 것이다.

일본의 러시아어 통번역자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요네하라 마리가 1970년대인가에 당시 소련과 일본 사진작가 공동작업을 하는 데 통역으로 도와주었단다. 같은 지역의 피사체를 함께 찍는 식이었다. 나중 에 보니 소련 작가들의 사진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요네하라 마리는 소련의 작가들은 필름이 부족해서 아껴서 쓰다 보니 사진 찍기 전에 구도를 잡고 어떻게 찍을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추론했다.

<야구란 무엇인가> 책의 지은이인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 기자 생활 초창기부터 통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66년에 나온 이 책의 초판본에서는 "통계는 야구의 핏줄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통계 데이터가 너무 많아진 1991년, 이 책의 개정판에서는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전달되는 정보가 많은 것은 아니며 정보가 많다고 해서 이용자들의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반드시 증진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통계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지금의 데이터의 양을 보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

2007년 제일기획 사보에 ‘정보의 양과 통찰력의 관계’란 졸문을 쓴 적이 있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때는 이미 온라인시대로 1991년보다는 실시간으로 엄청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가능했지만, 빅데이터라는 말조차 거의 쓰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손톱만큼 밖에 되지 않는 어떤 사실을 보고도 우리는 브랜드의 전체 세계를 파악할 수도 있고, 몇 기가(Giga)의 정보 파일을 쌓아 놓고도 그 브랜드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를 수도 있다. 그냥 정보라는 것만 쌓아 놓고 그 쌓인 것을 보고 흐뭇해하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정보량의 증가와 인간의 통찰력이 반비례한다는데 또 하나의 사례를 더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큐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10분 분량의 필름만 가지고 멋진 작품을 만든 그의 촬영팀을 두고 이런 말을 한 걸 기억한다.

“They did not see the ten-minute restriction as an impediment; they saw it as a creative benefit. (그들은 10분 제한을 장애가 아닌 혜택이라고 보았다.)“

TV CF를 두고 ‘15초의 미학’이니 하는 표현을 썼다. 광고계 인사로서 그 15초가 너무 짧다고 불평하는 이들은 만나본 적이 없다. 예전부터 그래왔기에 의례 15초라고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 15초라는 제한을 마이클 무어의 촬영팀처럼 우리 용어로 ‘끌로 팔 수 있는’ 기회이자 장치로 본 이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반전의 효과는 시간이 짧을수록 더욱 극적이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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