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시대의 ‘Wag the Dog’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시대의 ‘Wag the Dog’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8.1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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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다음 해 연도가 제목에 붙은 트렌드 서적들이 출간되는 것을 보면서 한 해가 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12간지를 채우고 다시 돼지해를 맞아 ‘PIGGY DREAM’이란 키워드를 들고 나온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 ‘3신 가전’이란 신조어가 나왔다. 원래 ‘TV‧냉장고‧세탁기’를 ‘3대 가전제품’이라고 불렀는데, 새로운(新) 3대 가전제품으로 ‘로봇청소기‧식기세척기‧빨래건조기’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신’이란 한자를 ‘God‘을 뜻하는 ’神‘으로 쓰기도 한단다. 집안일을 줄여주는 신기(神器)와 같은, 또는 신의 선물과 같은 기기라 해서 그리 부른단다.

세 가지 신기 중에서도 특히 로봇청소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을 넘어서 의인화까지 되어, 집안의 반려동물이나 귀요미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고도 한다. 우리집에서도 로봇청소기가 소파에 걸려 계속 같은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자, 처가 “아고 이런, 너 왜 거기서 그러고 있니”라고 하면서 빼주었다. 이후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아들이 꺼내주며 말했다. “이놈이 요즘 갈수록 요령을 피워요.” 가전제품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여차하면 이름을 지어줄 태세다. 한 지인이 자신의 집에는 소파가 너무 낮아서 로봇청소기가 들어가지 못하여, 아예 소파를 바꾸어버렸다고 했다. 몇 십만 원 짜리 로봇청소기를 위하여 몇 백만 원을 들여서 소파를 새로 산 것이다.

백과전서로 유명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1713-1784)가 친구에게 집안에서 입는 가운을 선물 받았다. 가운이 진홍색이라고 했으니 서재에서 무진장 돋보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재의 책상을 포함한 가구나 커튼 등을 가운에 맞추어 바꾸었다고 한다. 작은 소품이라도 갖게 되면, 그에 맞추어 다른 큰 것들까지 장만하게 되는 그런 심리를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또는 그렇게 작은 것을 샀는데, 그 때문에 더 크고 비싼 것을 사야 하나 고민하는 것을 디드로 딜레마라고 한다.

비슷하게 'Wag the dog'이란 영어 표현이 있다. 전체 다 쓰면 'The tail wags the dog.' 식이다. 원래는 'The dog wags the tail.'로 '개가 꼬리를 흔들다'가 되어야 하는데, 개와 꼬리를 도치하여 '꼬리가 개를 흔들다'니까, '부분이 전체를 흔들어 버린다'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나 뭔가 '거꾸로 되어 있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Wag the Dog'은 1997년에 나온 동명의 영화로 아주 유명해졌다. 구글로 'wag'이란 단어만 검색창에 써도 바로 이 영화가 나온다. 로버트 드니로와 더스틴 호프만이라는 당대 최고의 두 남자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대선을 앞두고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하여, 할리우드의 제작자를 고용하여 쇼처럼 진짜 전쟁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작년 말에 나온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8>은 개의 해를 맞아 키워드로 'Wag the Dog'을 뽑아 책 표지를 장식했다. 로봇청소기 때문에 소파를 바꾼 사람의 행위를 두고, 디지털 시대의 'Wag the Dog'이나 '디드로 효과'의 일종이라고 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主)와 부(副)를 반대로(反) 바꾸어서(轉), 문자 그대로 반전의 효과를 냈다. 고정된 배열의 도치, 곧 고정관념의 탈피에서 반전은 시작한다.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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