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한국의 본격적 옥외광고시대 개막은 언제일까?

[신인섭 칼럼] 한국의 본격적 옥외광고시대 개막은 언제일까?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19.12.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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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옥외광고 시대가 개막한 것은 언제일까? 견해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필자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이야기한다. 1970년 7월 7일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이 거대한 사업의 완공을 축하하는 개통식에 참석했다. 옥외광고에는 더 없는 축복의 날이었다. 왜? 서울-부산 간 416km 고속도로 오고가는(상하행선) 길에 야립간판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이한림 건설부 장관, 박정희 대통령 부부,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왼쪽부터). 출처 : 중앙일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이한림 건설부 장관, 박정희 대통령 부부,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왼쪽부터). (출처 : 중앙일보)

그 서곡은 이미 1년 전 서울-인천 고속도로 개통 때 나타났다. 70년대의 옥외광고에 관한 책은 매우 귀한데 구본무라는 분이 1976년에 써서 출판한 책이 있는데 제목이 영어로 된 “Graphic Situational Billboard Design Collection"이다. 이 책에는 서울 인천 간에 모두 15개의 야립간판이 있다. 그 가운데 정부 투자기업인 석유공사가 3개, 럭키그룹과 미국 칼텍스 합작인 호남정유(GS칼텍스)가 2개로 합계 5개의 간판을 세웠다. 업종으로 따지면 석유업종이 가장 비율이 높은데, 석유회사는 고속도로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유소를 만들어 기름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변 야립 간판 (출처 GRAPHIC SITUATIONAL BILLBOARD COLLECTION)
경부고속도로변 야립 간판 (출처 GRAPHIC SITUATIONAL BILLBOARD COLLECTION)

1967년에서 1979년까지 13년 기간에 우리 나라에 세운 야립간판의 수는 713개인데, 1970년에 세운 것은 11개였다. 100개를 넘은 해가 1972년이었고, 70년대 후반에 일어난 비판 여론 때문에 1978년에는 23개로 줄었다가 1979년에는 0개였다. 전성기는 1977년이었고 이 해 151개가 건립되었다. 그 무렵 규정에 따르면 야립광고 간 거리는 2km였으므로 계산상으로는 416km 경부고속도로 변에는 상하 양방향으로 각각 208개, 따라서 416개의 야립간판을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이대로라면 1시간 100km 속도 기준으로 400km를 달리면서 208개의 간판을 보게 된다. 경부간 고속도로는 야립간판 관람 여행이 된다는 어이없는 계산이 된다.

게다가 크기는 모두 가로 세로가 20M, 10M이고 간판의 디자인도 모두 대문짝만한 글자와 곁들이 사진이 고작이었다. 아마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고속도로가 될 것이었다. 물론 현실은 이와 달랐다. 이렇게 해서 70년대 옥외광고 전성 시대의 꿈은 경부고속도로 완공과 함께 시작되고 종막을 내렸다.

나는 1970년에 호남정유(GS 칼텍스) 선전(그 때에는 광고와 선전을 혼용했다) 책임자였다. 이 때 경인고속도로에는 인천에 가까운 곳에 호남정유의 야립간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 그만 이 거대한 야립간판이 무너졌다. 난리가 났다.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 가로 세로 20M, 10M는 평수로 따지면 60평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계약서에는 “천재지변”의 경우 간판이 넘어진 책임은 간판회사에 있지 않다는 조항이 있었다. “천재지변”은 영어로 “Act of God"이다. 즉 직역하면 하늘이 한 일이다. 따라서 인간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옥신각신이 있었다. 천재지변이란 풍속(風速)과 관련되는데 그 풍속이 어느 날 몇시 몇분에 야립간판이 있는 곳에 불어닥쳤다는 증거를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왜? 기상대에 그런 자료는 없었다. 결론부터 앞세우면 간판회사는 책임을 면제 받았다.

경인고속도로 그림 (출처 : GRAPHIC SITUATIONAL BILLBOARD DESIGN COLLECTION)
경인고속도로 그림 (출처 : GRAPHIC SITUATIONAL BILLBOARD DESIGN COLLECTION)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야립간판은 일단 빛을 잃었으나 그 뒤 다시 새 모습으로 부활했다.이로부터 4년 뒤에는 또 다른 옥외 광고 매체인 지하철 광고 시대가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개막되었다. “한강의 기적” 시대, 드디어 옥외광고의 시대가 열였다.

 


신인섭 前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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