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연속이었던 미드웨이 해전
반전의 연속이었던 미드웨이 해전
  • 박재항
  • 승인 2019.12.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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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웨이'(1976) 포스터
영화 '미드웨이'(1976) 포스터

12월 중순에 케이블TV의 클래식 영화 채널에서 1976년작 <미드웨이>를 보았다. 3부로 나뉘어져 너무 길어서 정작 미드웨이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봤다. 그리고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로 <미드웨이>의 광고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개봉한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11월 중순에 개봉했는데, 초기에는 2주 연속 백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나, 주마다 낙폭이 커서 2억 달러라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단다.

너무 길어서 영화를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나온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4편 ‘미드웨이 해전’편을 보는 것으로 달랬다.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글들을 보면 ‘운명의 5분’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1942년 6월 4일 10시 25분에 일본 항공모함의 항공감시병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미군의 급강하폭격기를 발견하고 “급강하다”라고 외친 이후의 5분 동안 일본 항공모함 2척이 순식간에 격침된다. 두 척의 항공모함을 잃으면서 일본의 해군 전력은 미국 태평양함대에 뒤지게 되었고, 전쟁의 주도권 역시 넘어가버렸다. 미드웨이 해전 전체가 끝났을 때 일본은 항공모함 4척과 전투기를 포함한 항공기 300대, 그리고 정예 조종사 수백 명을 잃었다. 전쟁의 반전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이를 두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코멘테이터로 등장한 <The Battle of Midway>란 책의 저자인 크레이그 시몬즈(Craig Symonds) 이렇게 말했다.

“1942년 6월 4일 10시 25분,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을 이기고 있었어요. 그로부터 5분 뒤 전투의 승기는 완전히 반대쪽으로 기울었죠. 역사상 그 어떤 때에도 역사를 이보다 빠르고 더 완전히 뒤집어버린 사건은 없었어요.”

시몬즈의 말에서는 반전을 일으키는 두 대비가 나타난다. 먼저 ‘1942년 6월 4일’과 태평양전쟁이 짝을 이루고 있다. 이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 연상시키면서 거의 7개월 동안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이라는 큰 흐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 7개월의 판세가 단 ‘5분’과 시간의 길이로 대비되면서 극적인 느낌을 더한다. 태평양전쟁이라는 일개 사건을 넘어서 다른 역사 전체와 비교하며 역시 역전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러한 대비가 커뮤니케이션에서의 반전 효과를 높인다.

사실 미드웨이 해전은 반전 효과를 불러온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군이 태평양과 동남아를 휘젓던 시절에 미국은 사기 진작과 함께 미국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 본토 폭격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한 작전을 세웠다. 미국 육군의 폭격기를 경량화하여 해군의 항공모함에서 발진시키는 아이디어가 실행되었다. 제임스 둘리틀 중령이 이끈 16대의 폭격기는 군사 시설 등의 목표를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신성불가침으로 자신의 영토와 영공을 여겼던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 대한 이런 공격의 싹을 없야애 한다는 일본 해군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 주장이 결국 미국 해군을 완전 소멸시키기 위한 대해전이란 미드웨이 작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는 꼭 문자나 영상과 같은 콘텐츠로 전달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행동 하나가 더 큰 울림을 가지고 전달되며, 반전의 파장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역에서 둘리틀 공습이 가진 의미다.

도쿄 공습을 위해 이함하는 둘리틀 폭격기 (출처 http://www.doolittleraider.com/)
도쿄 공습을 위해 이함하는 둘리틀 폭격기 (출처 http://www.doolittlera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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