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레트로의 반전과 진화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레트로의 반전과 진화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12.30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부터 인구에 계속 회자되고 있는 트렌드 중의 하나로 뉴트로를 들 수 있다. 몇 차례에 걸쳐 뉴트로에 관한 기고나 강의를 요청 받았다. 레트로를 새로운 형태로 즐긴다거나, 젊은이들이 즐기는 레트로라고 해서 뉴트로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레트로라는 트렌드는 과거의 역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있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의 공자는 그보다 몇 백 년 앞선 주(周)나라의 풍습과 예절과 음악과 시를 따르고 재현하려고 하였다. 14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유럽의 르네상스도 결국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간중심 철학과 예술을 되살리려는 레트로로 해석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클레오파트라 시대 풍의 인테리어와 치장과 의상이 무도회 등에서 유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유행도 다양하게 진행되는 현대에서 레트로는 상시적인 조류의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2000년 초에 당시는 ‘복고’라는 표현을 썼지만, 레트로에 대한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비교하자면 그때보다는 현재의 레트로가 살짝 반전을 거치며, 좀 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반전이 일어난 것일까. 레트로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면서 반전과 진화의 가닥을 잡았다.

첫 번째 레트로는 똑같이 복제한다고 해서 ‘replicative retro’라고 이름 붙였다. 보통 이전의 유행을 즐겼던 이들이 당시의 추억을 그대로 재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2014년 MBC <무한도전>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 특집을 방영하면서 한동안 전국이 ‘90년대 가요 열풍에 휩싸였다. ’90년대를 주름 잡던 가수들이 자신들의 이전 히트곡들을 가지고 나왔고, 30살을 훌쩍 넘은 팬들은 열광하던 10대 시절의 복장으로 공연장에 나왔다. ‘빨강머리 앤’도 2017년에 소설의 배경인 캐나다의 방송국인 CBC에서 제작하여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면서, 절판되었던 것들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판본들이 서점에 쏟아져 나왔다. 그림이나 활자를 다르게 하는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복제물, 곧 레플리카(replica)였다.

‘빨강머리 앤’ 열풍을 몰고 온 넷플릭스 드라마의 캐나다에서의 원제는 ‘Anne’, 국제판은 ‘Anne with an E’였다. 내용도 현대에 맞춰서 자주적인 개인으로서 앤을 묘사했고, 이전의 명랑, 발랄한 분위기보다는 어두울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캔디류의 소녀로만 생각했던 우리가 축약 혹은 후반이 생략된 원작 소설과 일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에서 만났던 앤과는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이를 나는 본류를 다른 관점에서 성찰하고 반영했다고 해서 ‘reflective retro’라고 부른다. 이런 성찰적 레트로의 반전이 패션에도 일어났다. 일본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옷의 절반만 만든다. 사람들이 내 옷을 입고 움직였을 때 비로소 내 옷이 완성된다." 뉴트로는 절반의 상태로 과거라는 옷장에 쟁여져 있던 옷들을, 젊은 층이 꺼내서 입으며 나머지 절반을 완성시킨 형태의 유행이다. 복고풍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항상 있었는데, 이들이 일정 시기 주류로까지 돌출하면서 반전처럼 뉴트로가 형성되었다.

마지막 레트로의 종류는 두 번째의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창작물이나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re-creative retro’라는 명칭을 고안했다. ‘빨강머리 앤’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올해 하반기 서울 성수동에서 몇 개월에 걸쳐 열리며 예상 이상의 인기를 끌었다. 40, 50대 엄마와 10, 20대 딸이 함께 온 관람객들이 상당수였다. 엄마가 자신의 추억 속 캐릭터들을 어린 딸에게 얘기해주었던 추억이 있다고 해서 ‘공유된 추억’, 곧 ‘shared nostalgia’란 개념 용어로 표현했었다. 그 서로 나누었던 대화를 되살리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한 단계 더 진화한 게 바로 ‘re-creative retro’이다.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전시 프로그램 중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전시 프로그램 중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