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태안 앞바다는 “바닷속 천년 수도”? - “목간”과 “죽간“, 한국 고대 광고사 연구의 메카가 되나?

[신인섭 칼럼] 태안 앞바다는 “바닷속 천년 수도”? - “목간”과 “죽간“, 한국 고대 광고사 연구의 메카가 되나?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1.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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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18일 충남 태안에서는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이 개관했다.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태안 마도 해역에서는 고려시대 난파선 4척이 발굴되었는데, 수만점의 고려 청자와 깨어진 조각들이 나왔다.

발굴된 유물 가운데는 처음으로 죽간(竹簡)이 나왔는데 나무 판이나 조각에 쓴 글을 복간이라 해서 대나무 조각에 쓴 것이다. (연구자에 따라 죽찰(竹札)이라 부르기도 한다.) 1975년 경주 안압지 발굴 때 처음으로 목간(木簡)이 발견된 뒤 나무 조각에 쓰인 기록들이 매우 중요한 역사의 기록이 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뒤 2007년에는 목간학회가 탄생하기도 했다.

발굴된 목간(木簡). 꼬리표를 매는 줄이 윗부분에 보인다. 화물을 받을 사람, 보낸 사람 그리고 대나무로 만든 화물이라는 글이 나와 있다
발굴된 목간(木簡). 꼬리표를 매는 줄이 윗부분에 보인다. 화물을 받을 사람, 보낸 사람 그리고 대나무로 만든 화물이라는 글이 나와 있다

이 목간과 죽간=죽찰에는 선박에 짐을 실은 일자, 출항 일자, 적재한 물건 예컨대 곡식의 발신자, 수신자, 화물의 종류와 수량 등도 기록되어 있다. 광고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나무나 참대 조각에 기록된 1,000여전 전 라벨(Label)이며 판촉 광고매체인 셈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발굴된 목간을 통해 신라시대(57 B.C.-918) 광고 매체의 한 가지로서 목간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 고려시대 (918-1392)의 목간과 죽찰이 발굴됨으로써 고대 광고의 연구 대상이 더욱 넓어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림에 보는 고려 청자음각연화절지매병(靑磁陰刻蓮花折枝文梅甁)과 그 죽찰이다. 2007년 낙지에 안겨 발견된 고려 청자에서 비롯된 태안 앞바다 수중 발굴 작업의 결과 수많은 청자 접지, 병, 잔 그리고 목간와 죽찰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험한 바닷길로 소문나 수많은 배들이 침몰했을 해저를 수색해 우리 조상들이 남긴 유물을 찾게 되었다. 아울러 그들의 삶의 일단을 알아 볼 길이 열렸다.

청자음각연화문 매병과 좋은 꿀이란 글귀가 보이는 죽찰

광고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신라, 백제, 고려, 조선 시대 광고에 대한 연구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황무지로 남아 있다. 한국 광고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1876년 한국이 개항한 이후 10년이 지나 1886년 독일 세창양행의 광고가 한성주보(漢城周報)에 게재된 이후로 집중되고 있다. 옛 광고에 관련된 연구는 오히려 광고가 전문이 아닌 연구자들의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옥외광고학회를 포함해 광고학 관련 단체가 넷이나 있는 우리 나라이지만, 근대 이전 광고에 대해서는 연구가 몹시 부족하고 낙후되어 동양 3개국 가운데 가장 뒤진 “창피”를 면할 길이 열린 셈이다.

태안 해중문화재는 “바닷속 1000년 수도”란 애칭이 붙을 만큼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역사의 일부로 등장했다. 그리고 광고학 특히 옥외광고 연구자들에게는 목간, 죽간=죽찰이 더 없이 소중한 연구의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은 이래서 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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