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모성 배틀 “쇼 미 더 motherhood”

[광고와 춤을] 모성 배틀 “쇼 미 더 motherhood”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8.1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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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인 중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이다. 젊었을 때 누렸던 기회와 목표의 상실을 경험하거나 지금까지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중년계획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경험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LG전자 광고에서는 중년여성, 정확하게 빈둥우리기 중년여성의 주부로서의 일상이 재현되고 있다. 중년 여성의 반복적이며 습관적인 노동패턴은 수동적인 가사노동자이자 일중독자로서의 일상성을 보여준다. 대화하거나 쉬는 동안에도 중년여성은 상대와 시선을 교류하지 않는다. 시선의 권한을 포기함으로써 관계의 수동성을 드러낸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소외되어 있다. 반면 제품은 소외된 가족들을 부르고 연결시키는 인간적인 시공간을 만들어 낸다. 건조기의 종료음이 울리면 제일 먼저 개가 달려가고 그 다음 할아버지, 손녀가 건조기 앞에서 합류한다. 실내에 웃음이 퍼진다. 건조기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여성이 하지 못한 일까지 해낸다. 텅 빈 모성의 자리를 채워준다.

타고난 가사 노동자이자 시중꾼으로서 여성의 천성(?)은 가족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에서 탁월함을 발휘한다. 그러나 중년여성에게는 현대 주부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전문적인 가족건강 관리자로서의 능력이 부재한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해법이 있다. 소비주체로서 그녀의 두 번째 천성이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녀는 탁월한 제품 일습을 소비함으로써 영리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가전제품들은 그녀 대신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실내 공기를 정화하고, 깨끗한 식수를 준비하면서 가족 건강관리자로서의 전문적 역할을 책임진다. ‘가족들의 건강관리’를 전담하게 된 가전제품은 항상 거기에 ‘존재’하면서 묵묵히 가족의 건강을 위해 빈틈없이 일한다. 중년 여성의 불완전한 모성과 대립적으로 제품은 완전한 모성을 의미한다.

가전제품은 중년 여성의 노동시간과 삶을 통제한다. 그녀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의 결핍을 메워주는 제품의 ‘완전한 모성’에 의해 이 후로도 오랫동안 가족 모두가 맘 편히 살 수 있다. 중년 여성 대 가전제품의 모성 배틀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중년여성이 기계적 노동의 달인이라는 위치에 도달했다면 가전제품은 차원이 다르게 전문적 노동의 고수라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전제품은 ‘함 없이 함’이란 무위(無爲)의 철학을 수립한다.

세련되게 연출된 상품신화 속에 깊이 가라앉아있는 중년여성은 과연 누구인가?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속 어디에도 중년여성을 위한 새로운 정체성의 자리는 없다. 모성의 명령은 그녀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모성에서 해방된 능동적이며 새로운 주체의 위치는 아직 설정되지 않았다. 광고의 서사는 이 중년여성이 정체성 투쟁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강한 의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중년여성이란 일반적인 규정 자체를 무력화하는 다양한 중년여성들이 존재한다. 중년여성이란 용어가 다양성을 포섭할 수 있어야 하는 정당성이 여기에 있다.

황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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