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일본 성냥갑 라벨은 예술?

[신인섭 칼럼] 일본 성냥갑 라벨은 예술?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2.12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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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기까지 1920~1930년대는 일본 사회가 아르데코(Art Deco)의 열풍으로 떠들썩했다. 세계1차대전 무렵 프랑스에서 대두한 아르데코는 시각예술 디자인양식으로 건축, 가구, 보석, 패션, 자동차, 영화 등 외에도 생활용품 디자인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은 가히 세계적이었다. 광고가 포함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일본의 성냥갑 디자인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1868년 명치유신 후에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성냥, 영어로 매치(Match)를 일본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875년 무렵이었다. 1870년대로부터 약 30년 동안 성냥이 일본의 주요 수출 상품이었다. 그러다 1930년대 초 성냥 시장이 때마침 유행하던 아르데코의 물결을 타고 동경 중심가인 긴자(銀座)로부터 요코하마, 오사카, 고베 등 지방 도시로 퍼져나갔다. 1930년대 중반에 절정에 이른 아르데코풍의 성냥갑은 “소형 명작 포스터”가 되었다.

후지다(藤田)라는 건축가의 설계라는 <그랜드 긴자>의 3월 27일 개관 성냥은 동경 긴자의 멋진 바(Bar)임을 풍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쿄카이칸(동경회관 東京會館) 안에 있는 Pacific Citizens Club, 즉 태평양 신사 클럽의 성냥은 아예 온통 영어 뿐으로 30년대 “영어를 아는 신사“들이 모이는 곳임을 풍기고 있다. 고베(神戶)시에 있는 <시바타 카페>의 까만 바탕에 춤추는 남녀를 그린 성냥갑에는 전차길 구부러지는 위치임을 적고 있다. 한편 오사카(大阪) CAFE AIOI의 성냥갑은 남녀의 얼굴을 콜라주한 듯 멋드러진 그림으로 일본 카타카나로 쓴 글 밑에 한문으로 위치를 적었다.

그림과 글자체 (타이포그래피)를 배합한 TEA ROOM의 소형 성냥갑 둘 가운데 하나는 영어로 TEA AND DRINK 그리고 상호인 FUKURAKU를 적었는데 아마 이 말은 복과 즐거움(복락 福樂)일 것이다. 작은 영문으로 GREAT TEA SALON이라 쓰고 카타카나로 아래 위 두 줄로 <엔파루>라 쓴 글자는 자세히 보면 성냥개비 모양이다. 가운데 영어로 쓴 것은 담배개피인 듯 싶다. 두 개 성냥갑 모두 작은 예술 작품이라면 과찬일까.

Chocoate & Candy Store 성냥은 서양인지 동양인지 분간하기가 힘든 Fusion이며, 이 역시 서양 선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독일 맥주집 성냥은 독일어와 일본어를 섞어 썼는데 주소는 영어와 한문으로 했다. 라인골드라는 독일어가 없어도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1994년에 출판한 120 페이지짜리 책에는 아마 600개쯤의 광고 성냥갑 그림이 있을 듯 싶은데, 소중한 1930년대 일본 사회의 단면도이기도 하다.

일본 사람들이 기록을 소중히 하는 일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까짓 성냥갑 그림을 모아 책을 내고 교환 모임를 개최하며 사고 팔고 하는 것을 보면 “그까짓 것”이 아니라 작은 서양 것이라도 받아 들여서 제 것으로 만드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방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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