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배우의 외모를 가진 천재 소설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배우의 외모를 가진 천재 소설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2.17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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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배우 말린 디트리히 같은 용모에 버지니아 울프같이 글을 쓰는 아주 희귀한 여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토마스 만을 그토록 매혹시켰다는 여성의 신비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번역을 위한 변명>(그레고리 라바사 지음, 이종인 옮김, 세종서적 펴냄, 2017) 109쪽

‘번역가의 번역가’나 ‘번역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레고리 라바사가 한 소설가를 두고 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길래 그레고리 라바사가 저렇게 묘사했을까 궁금해서 이미지를 찾아봤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란 브라질 출신의 소설가인데, 정말로 저 표현에 딱 들어맞았다. 소설가로서 그녀에 대해 라바사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로서도 아주 뛰어났다는 얘기다.

리스펙토르는 명석하고, 유려하고 생생한 산문을 구사한다. 그녀의 말을 번역하는 번역자는 그 말들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니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위의 책 112쪽)

긴 다리와 고혹적인 눈매의 독일 출신 배우인 말린 디트리히나 문학 부문에서 페미니즘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버지니아 그들만의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로 유머 섞인 독설로 유명했던 버나드 쇼의 숱한 일화 중 리스펙토르를 연상시키는 게 있다. 그를 흠모한 여배우가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의 멋진 외모에 쇼의 지능을 가진 애가 태어날 거라며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에 대해 쇼가 “만약 당신의 텅빈 머리와 나의 추한 외모를 가진 애가 태어나면 어쩔꺼요?”라고 쏘아붙였다는 것이다.

여배우가 원했던 바가 리스펙토르에게서 실현이 되었다. 디트리히와 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뛰어났던 점, 둘을 합친 신비로움과 재능을 온몸으로 발산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신이 질투했나보다. 라바사의 책에서 그녀의 인생을 간결하게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아름다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인생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결혼을 했으나 배신당했고, 리우데자네이루의 레미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불이 나는 바람에 아름다운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클라리시는 아주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 크게 고생하다가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그녀의 한평생을 생각하면 존 케네디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 생은 공평하지 않아."(위의 책 113쪽)

기우 겸 췌언으로 마지막 존 케네디의 말에 대해서 쓰자. 라바사의 책에 나온 원문은 이러하다.

“As John Kennedy is said to have remarked, "Life isn't fair."

여기서의 존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이다. 갑부 아버지에 잘 생긴 용모에 엄청난 학벌에 전쟁 영웅이고, 아름다운 부인에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까지 당선된 그가 저런 말을 했다니 그 자체가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런 재능과 행운의 끝이 결국 이른 나이의 암살되는 운명이었으니 저런 말을 할 법도 하다.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다면, 자신처럼 모든 것을 가진 이도 있으나, 대다수는 그러하지 못하니,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살라고 하는 잔인한 언사였을 수도 있다. 리스펙토르도 그런 면에서 공평하면서도 공평하지 못한 반전의 삶을 보낸 것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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