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직함바꾸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직함바꾸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2.24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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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로 탑을 쌓고, 제일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서 그 높이를 다투는 게임이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4명 한 팀에 18분 동안 진행한다. 18분이라는 시간은 아마도 50~60분이라는 정해진 수업 시간에 맞춰서 먼저 기본 설명을 하고, 끝나고 토의까지 진행하려니 그리 된 것 같다. 한국에서도 리더십이나 신입사원 교육 과정에서 이 게임을 하는 것을 수 차례 보았다. 어느 집단이 우수한 성과를 내는가에 관한 잘 알려진 사실이 있다.

변호사, 경영대학원생(MBA), CEO, 건축가, 유치원생 집단 중에 유치원생들이 경영대학원생이나 CEO, 변호사 집단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MBA과정 학생들이나 CEO들은 누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탑을 쌓을 것인가 토의하느라고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 허겁지겁하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에 비하여 유치원생들은 자유롭게 서로 시도하면서 쌓아 올리기에 실패도 하지만 성공하는 비율도 높다는 것이다. 이는 식상할 정도로 알려진 사실인데, 같은 게임을 두고 다른 실험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80팀을 선정하여 이 게임을 진행했다. 그런데 일부 팀의 경우 팀원들이 ‘자신의 재능, 강점, 열정에 잘 맞고 과업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반영한 직함을 만들고, ‘직함의 역할에 해당하는 책임과 업무’를 기술하고 서로의 직함과 업무 내용을 공유하게 했다. 자신이 맡은 업무와 공헌하는 가치를 반영한 ‘수다 최고책임자’, ‘사교계의 꽃’, ‘전략의 술탄’, ‘코드 수호자’, ‘제품 디자인의 신’ 등등의 직함들이 나왔다. 당연하게 직함을 만든 팀들의 성과가 그렇지 않은 팀들보다 월등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데도 직함 명칭을 가지고 반전을 이루어낸 사례가 있다.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소원을 이루게 지원하고, 희망, 용기를 주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법인인 ‘소원성취 재단(Make-a-Wish Foundation)’의 직원들은 업무 부담이 과중하고,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상대하며 겪는 슬픔 등으로 감정이 소진되는 등 고통이 심했다고 한다. 우연히 디즈니랜드에서 직원들이 고유의 가치, 정체성, 재능을 반영한 직함을 만들도록 한다는 걸 재단 대표가 알게 되었다. 재단의 직원들이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기쁨을 만들어내는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공식 직함에 더해 스스로 나름의 직함을 새롭게 만들도록 했다.

재단의 책임자 자신이 자기의 직함을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할머니’라 했다. ‘달러와 센스 장관 (COO: 최고운영책임자)’, ‘인사의 여신(행정팀 직원), ’행복뉴스 파발꾼(홍보팀장)‘, ’데이터 공작부인(데이터베이스 관리자)‘, ’행복 기억 메이커(소원팀 관리자)‘ 등의 직함들이 나왔다. 직원들은 기존 직함에 새로 만든 것들까지 더해진 명함을 지급받았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85%의 직원들이 감정 소진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헀다. 69%는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자신들이 종사하는 직무가 궁극적으로 기여하는 사명을 떠올리며 ‘극한 상황임에도 즐거운 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라고 했다. 그보다 커뮤니케이션 면에서 더한 장점이 있다고 본다. 이런 명함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재미있다며 어떤 일을 하고 있냐, 혹은 왜 그런 직함을 붙였냐며 물어보게 된다. 바로 대화가, 이야기가 시작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표준산업분류 코드같은 드라이한 직함명을 살짝 바꿔보라. 상상 이상의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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