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안내광고 - 처음에는 소개란(紹介欄). 우리 나라 신문창간 100주년 (2)

[신인섭 칼럼] 안내광고 - 처음에는 소개란(紹介欄). 우리 나라 신문창간 100주년 (2)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3.18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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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 1년 뒤 <동아소개란>을 시작했다. 지금은 안내광고라 부르지만, 시작은 소개란이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이 말도 그럴 듯하다. 첫 소개란이 나온 것은 1921년 3월 1일로, 1주일 전에 동아일보는 몇차례 사고를 냈다. 왜 소개란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 종류, 행수(行數) 규정 그리고 요금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1921년 2월 25일부터 며칠 연재된 &lt;동아소개란신설(東亞紹介欄新設&gt; 사고 및 3월 1일의 첫 소개란 광고가 게재된 신문
동아일보 1921년 2월 25일부터 며칠 연재된 '동아소개란신설(東亞紹介欄新設)' 사고 및 3월 1일의 첫 소개란 광고가 게재된 신문

행수는 활자 줄의 수를 말한다. 소개란 광고는 두 가지 종류로 나뉘었다. 특별은 다섯 줄로 3원, 보통은 석 줄로 1원50전인데 4회 이상인 경우는 20% 할인했다. 익명인 경우는 매회 30전을 추가했다. 광고 내용은 두 가지로 했는데, 하나는 물건이고 다른 것은 인사였다.

첫 회 광고 가운데 특별광고는 15-16칸 기와집 셋집을 찾는 것으로 물건 광고였다. 이 광고에 관한 문의는 동아일보 경리부로 하게 되어 있다. 석 줄 짜리 보통에는 물건 4건, 인사 1건이 있었다. 물건 4건의 내용은 셋집, 집 매매가 3건, 고적 도보(圖譜) 1건이었다. 인사는 1건인데 급사를 구하는 광고였다. “차가(借家)”라는 집 빌리는 광고에는 “중개 불요. 본사 광고부”라고 쓴 광고가 있는데 아마도 중개료를 지불해야 하는 중개없이 신뢰할 수 있는 동아일보 광고부에 중개를 위탁한 듯하다.

확대한 동아소개란 신설 사고와 첫 동아소개란

동아일보 첫 광고가 나간 10여년 뒤, 1934년 2월 1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28개 안내광고 가운데는 유모, 식모, 찬모 같은 지금 한국 젊은이에게는 낯선 직업의 여성을 구하는 광고도 있다. 이제는 사라진 “하인(下人)”, 남녀 구분 없이 종을 말하는, 이 하인을 구하는 광고도 하나 있다.

1934년 2월 1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독자이용란(讀者利用欄)'이라 부른 안내광고가 쉐볼레 트럭 광고 옆에 있다.
1934년 2월 1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독자이용란(讀者利用欄)'이라 부른 안내광고가 쉐보레 트럭 광고 옆에 있다.
조선일보 안내광고
조선일보 안내광고

초기에는 그리 대단치 않았던 안내광고가 1930년대가 되자 3단 크기로 5분의 2단 정도를 차지하는 광고의 중요한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안내광고의 종류도 물건과 인사 두 가지에서 10여 가지로 늘어났고 광고주는 원산, 김제, 동래, 황해도 송화, 평남 용강, 부산, 평북 선전, 함흥 등 전국으로 퍼졌다. 여성 결혼 상대를 구하는 동경에 있는 교포의 광고도 있다.

안내광고야말로 사회의 구석구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회상의 파노라마이며, 속임수의 안내광고까지 포함해서 한 시대와 사회의 민낯을 반영하는 광고라 할 것이다. 또한 나라 따라 안내광고의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에는 없는 결혼 안내 광고나 가족의 사망을 알리는 부고가 몇줄짜리 안내광고로 게재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자 아니고는 염두도 못내는 부고를 값싸고 누구나 손쉽게 게재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문화의 나라도 있다. 게다가 그 표현도 매우 다양하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방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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