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퀴노아를 둘러싼 진실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퀴노아를 둘러싼 진실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3.2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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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 천연 고영양의 슈퍼스타들이 즐겨 먹는 스타푸드로 떠오른 퀴노아이지만, 그전에는 극빈 원주민들의 식품으로 닭 모이로나 쓰는 작물이라는 식의 평가를 받았다. 그런 작물의 값이 마구 올랐으니, 주식으로 삼던 하층계급 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충분히 걱정할 만하다. 실제로 퀴노아의 소비가 주산지인 볼리비아에서 5년 동안 34%나 감소하였다고 하니, 자신들의 우려가 맞았다고 생각했겠다.

조사 대상으로 삼은 기간 이전부터 퀴노아의 소비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었다는 데 반전이 있다. 게다가 퀴노아 소비가 차지하는 지출 비중은 0.5%에 불과했다. 절실했으면 못 사서 먹을 정도로 생활비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 수준이었다. 더욱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다른 음식 종류가 많아졌던 이유가 더 결정적이었다. 한국에서 주식인 쌀 소비가 준 원인을 가격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원래 주식이었던 탄수화물 식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밀로 만든 인스턴트 면을 먹는 것이 더 저렴하고 쉬운 선택지’라고 한 <식사에 대한 생각>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2020)의 문장처럼 가격은 소비 감소를 거드는 요소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대량생산된 제품들이 들어오면서 원래의 산지에서 공급도 달리고 그래서 가격도 오르는 전통 상품들이 꽤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국 동해안에서 오랫동안 어부로 일했던 분이 길거리에서 쥐포가 인기리에 팔리는 걸 보시고는 “옛날에 저 쥐치는 팔 수도 없어서, 동네 사람들한테 그냥 줘버리고 그랬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그런 생선이 오징어를 대체하며 잡는 족족 타지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지역 사람들 상당수가 자기들은 쥐치회니, 포니 노인네들한테 이야기만 듣고 정작 맛본 적도 거의 없다고 한다. 울릉도의 오징어도 한때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이 되고, 흑산도 홍어도 서울에서나 맛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린이들의 영양 상태가 악화된 것도 퀴노아를 먹지 못한 까닭보다는 ‘인스턴트 면’ 같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많이 섭취해서라는 게 더 타당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지금 청소년들이 그들의 조부모보다 발육 상태는 좋지만, 건강은 나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같은 식품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말초적인 입맛에 맞추다 보니 영양소가 한쪽으로 치우치며 성장해서라고 한다. 그런 불균형은 사람의 몸 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퀴노아를 재배할 때 예전 우리 농부들이 소를 이용하듯 라마가 많이 쓰였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라마의 분뇨가 땅을 기름지게 하는 비료 역할을 했다. 경작지를 넓히며 라마를 위한 목초지가 사라졌고, 라마와 인간 대신 트랙터들이 땅을 갈면서 토양이 척박해졌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대지와의 관계가 어그러졌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오직 퀴노아를 먹겠다는 서구인들의 열망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볼리비아나 페루의 퀴노아 재배 농가와 인근 주민들의 소득은 현저하게 올랐고, 그와 더불어 전체 생활 수준도 객관적 기준에서 꾸준히 개선되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서구의 몇몇 언론인들이 남미의 퀴노아 농부들에게 씌운 스테레오타입이었다. 자신들이 전통이고 자연적이라고 규정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신의 기준에서 그냥 안쓰럽게 보았던 것이다. 그 안쓰러움을 사실들의 조각조각으로 꿰맞춰 강변했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진실’ 좀 심하게 말하면 ‘탈진실, ’post-truth’ 같은 얼토당토않은 반전이 일어났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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