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가족의 순간

[광고와 춤을] 가족의 순간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20.03.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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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카드 광고는 한 장의 흑백사진을 통해 다가 올 12월의 홈 커밍 데이에 재회할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우연히 가족 모두가 집에 있게 된 수요일 저녁의 한 순간’을 입증한다. 그러나 가족 모두가 집에 있게 된 사건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라 직접 요리한 음식들은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된 요리’를 내포한다. ‘5인용 식탁’, ‘의자 다섯 개’, ‘식탁매트 다섯 개’가 지시하는 계획된 소비의 과정과 장보기, 요리하기와 같은 준비된 요리 과정은 새 식구를 맞이하기 위한 통과의례의 과정을 함축한다. 식탁이란 공간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각자의 자리를 배정해 주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도록 요구한다.

광고는 재혼으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관계를 함축한다. 5명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들은 모두 분산된 시선을 보여준다. 남자는 남자아이를 내려다보고 물구나무 선 남자아이는 좌측 전면의 여자를 본다. 발레리나 복장을 한 어린소녀는 식탁 아래의 개를 내려다보고, 좌측에 앉은 여자는 몸을 약간 틀어 우측에 있는 어린 소녀를 본다. 광고의 중앙에 배치된 소녀는 음식을 내려다본다. 좌측 유리를 통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과 조명을 켜지 않은 다소 어두운 실내, 연초점으로 처리된 사람과 사물들은 ‘따뜻함’, ‘내밀함’, ‘행복감’ 등을 전달한다. 모노톤으로 처리된 사진은 ‘가족에 대한 기억’을 내포한다. 동시에 ‘흑백’, ‘연초점’이란 기표는 이 가족의 인종학적 다양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가족’이란 일체감을 제공하고 있다.

자크-앙리 라르티크가 찍은 한 장의 사진 빌레빌르해변(1908)은 ‘순간적인 시각’을 전달한다. 카메라와 시선을 교류하지 않고 좌. 우로 움직이는 라르티크의 사진 속의 인물들은 ‘해변에서의 순간’을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연출은 없다. 뜨거운 태양이 있고, 짙은 그림자가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마스터카드 광고 속 한 장의 사진은 가족의 순간을 인하한다. 그리고 내재된 문제적 요소들은 그대로 내버려둔다.

이 광고는 현대적인 가족의 이미지, 자유로운 가족관계를 전달하는 듯하다. 그러나 가족의 순간을 포착한 식탁 풍경은 계속해서 진행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를 보유하고 있다. 식탁이란 공간에서는 식사시간과 놀이시간이 통제 없이 허용되고 있다. 식사중인 테이블 밑을 지나가는 대형견의 행동 역시 통제 불능의 상황을 은유한다. 이들 가족들의 분산된 시선은 ‘관계의 불안정성’, ‘현실문제에 대한 회피’를 내포한다.

a가 창문을 열면 b가 창문을 닫는다. a가 창문을 닫으면 b가 창문을 연다. d가 왼쪽에 비누곽을 오른 쪽에 가글컵을 두면 a는 둘의 위치를 바꾼다. 가끔 c는 가글컵을 치워버린다. d는 새 가글컵으로 비누곽 옆을 다시 채운다. 무슨 이야기냐고? 어떤 가족구성원들이 만든 무한반복게임. 일명 ‘아무나 이겨라!’를 소개한 거다. 상황이 이러하니 가족의 순간을 동결한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을 거실 한편에 두고 그럴 듯한 가족관계를 연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황지영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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