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썌클턴의 전설적 구인광고의 진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썌클턴의 전설적 구인광고의 진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3.30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보다 강한 실' 본문 캡처
'총보다 강한 실' 본문 中

<총보다 강한 실>(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윌북 펴냄, 2020) 262쪽의 일부이다. 남극해에 일 년 넘게 갇혔지만, 탁월한 리더십으로 모든 대원을 무사히 끌고 나온 어니스트 섀클턴이 탐험 원정대를 모집하며 했다는 전설적인 광고 문구이다.

'인간은 위대한 여행을 원한다'라는 첫 구절을 보고, 미안한데 웃음이 나왔다. 'Men Wanted'라고 '사람 구함', 곧 '구인'이라고 제목 써 붙인 것을 저렇게 철학적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아래에 보니 '헌정된 신문광고'라고 했다. '헌정'이라면 섀클턴을 기리기 위하여 누가 광고를 집행했다는 것인데 이상하지 않은가. 번역된 책의 원저의 원문을 찾아보니 'attributed to Ernest Shackleton'이라고 되어 있다. 섀클턴에 의하여 집행되었다든지 만들어졌다고 'implemented by', ' run by', 'created by' 등의 동사를 쓰면 되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attributed to'라고 '결부된', '연관된' 식의 모호하게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썼을까.

​광고계를 떠나서 리더십 강의 등에 저 광고가 아주 많이 나온다. 도전 의식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본심을 자극해서 자발적인 참여와 인내를 이끈 사례로 거론된다. ‘더타임즈 (The Times)’에 광고가 실린 직후에 탐험대에 합류하고자 5,0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아래와 같이 저런 식으로 신문에 실렸다는 사진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엄청난 반전이 있으니, 저 광고가 실린 원본 신문은 찾을 수 없고, 더욱이 저런 광고를 했다는 언급조차 섀클턴 본인은 하지 않았다. 탐험에 참여했던 대원 중에서도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한 연구자는 섀클턴의 탐험 계획 자체가 사전에 워낙 알려져 있었고, 동참하려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에 구인광고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The Times에 실렸다고 알려진 섀클턴의 광고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보니,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본격 조사를 하고, 소액이나마 현상금도 걸고 제보를 기다렸다. 결론적으로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실린 글에 의하면, 그 광고는 나중에 만들어낸 신화일 확률이 거의 100%이다. 많은 역사학자나 서지학자들이 섀클턴이 했다는 구인광고의 원본을 찾고자, 당시 섀클턴의 동선에 따라 각 지역의 신문들을 뒤졌지만, 저 광고를 찾을 수 없었다.

광고 자체를 언급한 사례를 찾아서 자료를 뒤진 결과는 놀랍다. 섀클턴이 죽고 거의 30년 가까이가 지난 1944년에 어느 자기계발서 같은 책에서 저 광고가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이 되었다. 그를 근거로 1949년에 위대한 광고물 100선을 담았다는 책에서, 그 중의 하나로 저 광고를 선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85년 발간된 섀클턴의 전기에 저 광고가 다시 드러나면서 숱한 책들이나 글에 봇물 터지듯 인용이 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면 뭐 '헌정'이라고 한 게 'attributed to'를 잘못 번역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말 자체로는 딱히 틀린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함을 기려서 '헌정'한 가짜 광고인 것 같으니까 말이다.

섀클턴의 광고처럼 실제 존재하지 않고 사실이 아닌데 인용되고 활용되는 말이나 문구가 많다. 친한 친구의 책에 나온 두 개는 다른 데서도 자주 인용되는 것을 봐서 지적해줬다. 제발 엉뚱한 이들을 저작권자로 인용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여기 옮긴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 선택(Choice)의 연속이다." (장 폴 사르트르)

"큰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나무와 연장을 주고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줘라. 그러면 그 사람 스스로 배를 만드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중에서)

사르트르나 생텍쥐페리나 저런 말 한 적 없다. 생텍쥐페리 다른 작품에서 억지로 조금 비슷하지 않냐고 막무가내 우길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어린 왕자>에는 그럴 만한 구절도 없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