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와 존 아웃

멍 때리기와 존 아웃

  • 황인선
  • 승인 2018.12.12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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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원시시대 인류들에게 방향과 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특히 방향은 더 중요했다. 잘못하면 길을 잃고 맹수들 밥이 되니까. 그래서 상하/좌우라는 방향개념이 발달했다. 그것이 살아남아 지금도 상원/하원, 좌파/우파 개념이 강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현대는 GPS 기술 발달로 내비게이션이 나오면서 길을 잘못 들어도 바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있게 되었다. 클로테르 라파이유 박사는 그의 책 <글로벌 코드> 중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GPS형 사고방식’에서 마법의 단어 재계산(recalculation)을 제시한다. 계산이라는 말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요지는 틀렸다고 후회하지 말고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것이다.

경로 이탈하기

정답만 추구하며 영리하게만 살려고 했던 우리 삶에도 이젠 그런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비게이션은 길을 벗어나도 “경로를 이탈했습니다.”하고는 “당신은 이제 죽었습니다.”하는 대신 바로 이어서 “새로운 경로를 안내합니다.” 라는 멘트가 뜬다. 목적지만 제대로 입력되어 있으면 좀 돌아가도 1,2 분 늦어질 뿐이다. 심지어 어떤 때는 더 빨라지기도 한다. 현대는 경로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다른 경로로 가도 크게 더 걸리지 않는다. 그런 내비게이션을 보다 보면 길을 조금 잘못 가고 조금 틀려도 인생을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경로를 받아들이는 오픈된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필자가 문빠는 아니지만 그의 삶은 새겨볼만한 것이 많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수재였지만 가난에 절망하여 술 담배로 방황하다가 재수를 했고 학생 때는 데모를 하다가 감옥에도 갔다. 군사 정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당시 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사시 합격을 했고 연수원 수석을 했어도 법관이나 검사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돌아가 노무현을 만나 돈 못 버는 변호사로 살았다. 후에 우여곡절 정무수석, 비서실장 등이 되었어도 존재감은 없었고 노 정권이 끝나자 시골로 내려가 바둑 두고(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을 보면 문재인의 물건은 바둑판이었음) 아내 김정숙과 꽃구경을 다니는 것이 낙이었다. 노 대통령이 죽자 다시 정치 길에 나선다. 대통령이 될 사람치고는 돌아도 한참 돌아간 거다. 대선에서 지고도 허-허- 싱거운 웃음에 늘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이제 물 건너간 사람이다 싶었는데 촛불집회 덕분에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고 경제는 시끄러워도 남북 이슈는 많이 진전되었다. 정 철 카피라이터가 썼다는 “사람이 먼저다.”는 그의 현재 위치며 최종 목적지이므로 돌아도 결국 그리로 갈 것이다. 아니,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맞는 건데 사람이 먼저라니... 그게 우유부단 우왕좌왕 바보 아니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원래 크게 현명한 자는 크게 어리석다(大愚)고 했다. 십대를 걸쳐 부자로 살았던 경주 최부자네 호도 대우고 고택의 편액도 대우헌(大愚軒)이다. 큰 어리석음으로 최대 최장의 존경을 받는 부자가 된 것이다. 그러니 큰 어리석음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독자적인 와싱 기술로 빈티지 진(Jean) 패션을 창조한 이탈리아의 디젤은 ‘더 데일리 아프리카’ 캠페인에 이어 ‘멍청해져라. (Be Stupid)’라는 캠페인을 꾸준히 한다. “ 똑똑한 사람은 머리를, 멍청한 사람은 용기를 갖고 있다.”, “ 똑똑한 사람은 계획을 하지만, 멍청한 사람은 스토리를 만든다.”, “ 멍청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건 재미있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 등 디젤의 대우(大愚) 캠페인을 보면 대체에너지인 디젤을 회사 이름으로 한 디젤스럽다. 실수 안하고 똑똑하게 살고 싶은 분들, 이렇게 디젤스럽게 돌아가는 것도 인생의 또 다른 길 아닐까.

한강변에서 멍 때리기 대회도 열리고 LA와 중국에서는 한국식 멍 때리기가 유행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멍 때리다 유사한 말로 ‘뻥 찌다’가 있고 같은 뜻의 영어는 zone out이다. 잠시 존에서 나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유체이탈이다. 동의어는 space out. 이 영어 표현이 잠시 경로에서 이탈한다는 내비게이션 사고와 비슷하다.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사무실에서 쓰러졌던 아리아나 허핑턴은 <수면 혁명>을 썼다. 전작은 <제3의 성공>이었는데 웰빙과 지혜, 내면의 여유로 성공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했던 그녀도 자기 말처럼 살지 못하다가 결국 쓰러진 것이다. 그녀가 해답으로 찾은 수면은 최고의 멍 때리기며 존 아웃이다. 경로이탈, 존에서 잠시 나가는 이 내비게이션 사고에 착안해서 상설 ‘멍 때리는 공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는 말을 걸거나 아기/반려동물을 데리고 오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맥박이 펄떡거리거나 책을 보면 퇴장이다. 대한민국 뇌 회복, 면역력 증강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2019년 트렌드 리포트 읽느라고 부산할 당신, 12월엔 멍 때리며 존 아웃 해보시길.

황인선 : 전 제일기획, KT&G 마케터. 현재 (사)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주)브랜드웨이 대표. 중소벤처기업부 소통 분과위원장. 저서 <동심경영>,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컬처 파워> 등 다수, ishw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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