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INNOVATION : 경방(경성방직주식회사) 1930년대 포스터와 광고

[신인섭 칼럼] INNOVATION : 경방(경성방직주식회사) 1930년대 포스터와 광고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4.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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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단장한 한복 차림의 여성이 <태극성>이란 브랜드의 광목 천을 손에 들고 방에 앉아 있다. 가위가 놓인 것을 보니 이 무명으로 옷을 만들려는 듯. 광목은 무명실로 짠 천으로 가장 흔히 쓰이던 옷감이다. 광목의 영어는 Sheeting.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인 1930년대 한국의 아름다운 여성의 대표인가? 흰색 저고리, 곤색 치마, 빨간 옷고름 차림과 배경에 놓인 농짝 등 무척 신경을 쓴 사진이다. 사진 좌우에는 “값싸고 질긴 광목 태극성 광목”, “조선서 일등 광목 태극성 광목“이란 글이 있고 아래는 ”짜는 곧(곳) 경성방직회사”로 모두 한글로 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품 사용자인 광고 타깃이 여성이고 대개 한문을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 최초의 현대적 기업으로 방직회사를 시작한 사람은 동아일보 창립자이기도 한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1891-1955). 교육가,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의 결과 문화정치로 바뀐 조선에서 이 해 10월에 경상방직을 주식회사로 설립했다.

그리고 서울 영등포에 현대적인 대공장을 세웠다. 만든 광목의 브랜드명을 보면 창립자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대중 제품인 광목을 팔려니 광고도 많이 했다. 그림에 보는 1925년 5월 9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전5단 크기 광고는 특출한데 그 헤드라인이 무척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살림에서 5천만원 해외 유출. 연년이 빼앗기는 놀라운 숫자. 우리의 힘으로 이갓을 막으려면 우리 살림 우리 것으로”이다. 해외로 빼앗긴다는 말은 일본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본으로 연간 5천만원이라 거액이 나간다는 말이다. 광고라기보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선언문 같기도 한 이 광고를 원문과 같은 레이아웃으로 하고 한문을 섞은 바디 카피 전문은 그림과 같다.

1907년에 공포된 소위 광부신문지법에 저촉되지 않고 이런 광고가 게재되었다는 것이 이상할 만큼 대담한 광고이다.

그림에 보는 1930년대 포스터 제작에는 숨은 고생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모델 에이전시가 있을 리 없던 그 무렵 여염집 여성을 이런 광고 모델로 찾아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설사 연예인이나 기생을 설득한다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상업사진작가를 찾는 일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고 제작에 관여한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카메라맨 등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는 것은 아직 “광고쟁이“로 불렸을 193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언뜻 그까짓 포스터나 광고 할지 모르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숨은 고충이 이만저만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19년에 1인 1주라는 대담한 발상으로 주식회사를 시작한 20대 후반의 청년 김성수의 대담한 통찰력과 개척정신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nnovation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성방직주식회사는 지금 경방이다. 옥에 티는 훗날의 친일 행위였다.

 


신인섭 (주)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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