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든 것을 걸고, 버리는 용감함이 반전을 만든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든 것을 걸고, 버리는 용감함이 반전을 만든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5.11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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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제갈양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 (출처. 구글 검색)
제갈양에게 유언을 남기는 유비 (출처 구글 검색)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그의 의형제인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고 친히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의 아이들까지 유비의 별칭인 유황숙이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초반에 위세를 떨쳤지만, 결국 오나라 육손의 불 공격에 크게 패하고 오나라 국경에 위치한 백제성으로 후퇴하였다. 시름에 잠긴 유비는 병이 들어 결국 백제성에서 죽음을 맞게 되어 제갈량을 비롯한 중신들을 그리로 불러 유언을 남긴다. 죽음을 앞둔 유비는 제갈량이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한다.

“만약 내 아들이 보좌할 만한 인물이라면 그를 보좌해주고, 만약 재능이 없다고 여겨지면 승상 당신이 직접 성도의 주인이 되도록 하시오.”

이 순간이 예순셋의 나이로 40년간 전장을 누빈 유비가 가장 그 용감함을 발휘했던 순간으로 나는 본다. 유비는 그의 자식과 나라를 걸고 유언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그의 모자란 아들 유선의 안전과 제갈량의 충성을 확보했다.

사실 유비는 낯 두껍고 속마음을 감추는 ‘후흑(厚黑)’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 그런데 이 후흑은 무언가를 버림으로써 이루어진다. 유비가 가장 잘 버린 것은 자신의 체면이었다. 조조와 둘이 식사를 하면서 ‘천하의 영웅은 나 조조와 당신뿐’이라는 조조의 지적에 속마음을 들킨 유비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침 천둥이 치자 유비는 천둥소리에 무서워서 그랬다면서, 천둥소리 따위에 놀라고 겁을 내는 소인배로 자신을 비춰 결국 조조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이후에 유비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눈물을 흘려서 모면하는 눈물 신공도 종종 발휘한다. 찌질하게 볼 수도 있으나 그 역시 체면 따위는 대의를 위하여 아낌없이 버린 용감한 행동이기도 하다.

구천 (출처 나무위키)
구천 (출처 나무위키)

중국 역사에서 자신을 버려서 더 큰 일을 도모하고 이루어내는 용감함을 보여준 사례는 꽤 많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과 같은 사자성어에 지식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춘추시대 월나라의 구천이 군주 중에서는 대표적인 예이다. 오나라 왕 합려와의 1차 전쟁에서 자신의 즉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사형수들을 적군 앞에 내보내 스스로 자결을 하게 만드는 그로테스크한 행위로 오나라 군대의 얼을 빼놓은 후 양동작전으로 승리를 거둔다. 사형수이지만 자신의 가용자원인데 버리면서, 절대열세의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렇지만 섶 위에서 자면서 복수의 칼을 갈은 합려의 뒤를 이은 부차(夫差)에게 패하게 된다. 천하의 미녀인 서시를 바치고, 최고의 보물을 바치며 신하의 예를 지극정성으로 하면서 목숨을 부지한 구천은 결국 쓸개를 핥으며 기회를 노린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켜 22년 동안의 오월 두 나라의 긴 싸움을 마무리하며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자로 떠오른다. 1차전에서의 전투 자원인 사형수에 이어 미녀, 보화, 왕으로서의 특권까지도 버릴 줄 아는 용맹을 지닌 구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마천 (출처 위키피디아)
사마천 (출처 위키피디아)

사마천은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서 남성을 거세당하는 궁형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에서는 궁형을 내리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선택권을 주었고, 대부분은 자결을 택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치욕을 감수하면서 궁형을 선택했고, 결국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사마천이 당시의 여느 남성들과 같이 자존심을 내세워 자결하였다면 그의 이름은 한무제(漢武帝) 때 죽임을 당한 숱한 관료 중의 하나로 단지 재판기록에나 남았을 것이다.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도, 역사가로서 사마천의 불후의 명성도 버리며 얻은 반전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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