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전도 배짱이 있어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전도 배짱이 있어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5.25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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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녀' 책 표지(좌)와 영화 포스터(우)
'독신녀' 책 표지(좌)와 영화 포스터(우)

<독신녀>라는 제목의 소설이 1970년대 말 어느 한 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5년에 작고한 소설가 전병순 님의 작품으로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광고가 아주 큰 역할을 했는데, 지금과 비슷하게 책 광고의 전형적인 유형으로 책 표지 그림이 실리고, 도발적인 헤드라인을 달았다.

"독신녀, 그녀는 이 밤 무엇을 하는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독신녀> 소설에 대해서 혀를 차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 같은 호기심 많은 학생이 '독신녀, 그녀는 이 밤 무엇을 하는가?' 하는 문구에 혹해서 그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어. 내가 작가분도 개인적으로 잘 아는데, 그냥 자신의 얘기를 소설식으로 쓴 것이고,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분이 아니에요. 그 독신녀는 밤에 무엇을 하나? 여러분과 똑같이 잠을 자요. 그런 광고에 현혹되지 마세요."

아마 그 소설이 당시로써는 선정적인 옷차림과 포즈의 여배우를 포스터 전면에 내세운 같은 제목의 영화로 나오면서 화제가 되어 선생님께서 소설까지 언급하신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소설도 당시에 새롭게 출간된 것도 아니고 60년대 중반에 나온 것을 단행본 형식으로 재출간한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영화가 나오며 완전 역주행을 한 셈이다. 나는 그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특히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것에 설마 하면서도, 영화 포스터 사진과 책 광고 문구에 몸이 달아 소설을 구해 본 친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었다.

티 바넘(좌)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위대한 쇼맨'
티 바넘(좌)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위대한 쇼맨'

사실 광고 문구로만 치면 거짓을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잠재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구매로 이끄는 기가 막힌 성공을 거둔 광고였다. 1800년대 말 미국에서 진귀한 물품과 신기한 사람과 동물들을 전시하고, 구경시켜 큰돈을 번 피 티 바넘(P.T.Barnum)의 사기에 가까운 광고보다는 더욱 앞서 나간 선진 형태의 광고였다. 휴 잭맨이 주연한 영화 <위대한 쇼맨>의 실제 모델이었던 바넘, 바로 ‘바넘 효과’라는 용어의 주인공인 그 인물이다. 바넘 자신이 고백한 대로 그의 성공의 유일한 열쇠는 바로 사기, 거짓 광고였다.

80세도 되지 않은 흑인 노파를 그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유모 역할을 한 161세의 세계 최고령 노인으로 둔갑을 시켜 광고에서 소개했다. 큰 물고기에 원숭이 머리를 달아서 인어라고 속이고, 성장이 지극히 더딘 5살 아이를 남북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난쟁이 엄지 장군(General Tom Thumb)으로 포장을 하였다. 당시에도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다. 지금과 같으면 허위광고로 바로 걸릴 일이었다. 혹시 광고가 그대로 나갔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의 거센 항의와 환불 요구와 고발사태가 줄을 이었겠지만, 그런 심각한 사태 없이 미국 최고의 흥행사로 수십 년 영화를 누렸다. 그가 광고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Advertising is to a genuine article what manure is to land, - it largely increases the product.” (광고와 사실 보도는 땅과 거름의 관계와 같아. 어쨌든 산출물을 증가시키거든.)

냄새가 나고 보기 싫다고 해도 거름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작물들이 풍성하게 제대로 자라게 하듯, 광고가 있어서 언론 매체가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지 않냐는 말이다. 사실 그는 언론에서 그를 두고 뭐라 하든 거의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말로는 거론하는 자체로 관심을 두게 하는 것이니 좋은 일이라면서, 자기 이름의 철자만 제대로 써달라고 농담을 했다. 실제로 아무리 나쁜 기사라도 대개 그의 흥행을 돕는 반전으로 작용했다. 사소한 것은 무시하는 배짱으로 이루어낸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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