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무데뽀의 반전은 없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무데뽀의 반전은 없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6.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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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2차대전 초기 말레이시아를 휩쓸며, 싱가포르에서 영국군에게 호통을 치고 항복을 받으며 나름 용명(勇名)을 떨쳐서 '말라야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야마시타 토모유키가 일본 육군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느 시험에 "고지의 전황은 불확실한데, 어떻게 점령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나오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고지의 상황은 모른다. 고지를 향하여 전진!"

중일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 등의 큰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일본의 정보활동은 매우 뛰어났다. 그런데 실제 전쟁에 돌입해서는 야마시타와 같은 무모한 저돌성만 빛나게 되었다. 처음의 승리에 너무 도취한 측면도 있고, 그렇게 큰소리치는 게 눈에 잘 띄고 무사답게 보인다는 착각도 했다. 또한, 자원 자체가 워낙 부족해서 정신력만을 강조하다 보니, 꼭 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잊어버린 면도 있다. 태평양에서의 승패를 가린 미드웨이에서의 패배 역시 정보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2차대전 때 일본군 인의 무사도, 정신력, 애국심에 바탕을 둔 용맹함은 모두 높이 산다. 그렇지만 어느 전쟁사학자는 일본의 용맹성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신도(神道)에 기반을 둔 종교적 신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는 데 가치를 높게 두어, 결과적으로 전략적 차질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심하게 얘기하면 전체 전략의 큰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개인적 구원 차원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반어적 이기주의가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군의 또 하나의 약점은 바로 보급이었다. 전방의 소총수 하나를 위하여 미군의 경우 18명이, 영국군은 8명이 지원을 해주는 데 반해서, 일본은 거의 동수가 배치되고 그마저도 나중에는 아예 없애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얘기를 보면, 상륙 자체보다 그를 위한 물자들의 확보와 수급에 걸린 시간과 노력이 실전에서의 전투력 그 자체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당시 보급을 맡은 장군의 표현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와 같은 도시 전체를 옮긴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 말이 정말 실감이 난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디트로이트와 같은 도시를 옮겨서 만들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하여 그런 도시를 확보하라는 식의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잘 나갈 때야 별문제가 아니지만, 삐끗하면 바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계획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맥아더는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전략의 3요소를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 Situation : 전황 파악을 위한 정보력
  • Support : 적절한 지원과 보급
  • Spirit : 넘치는 사기와 정신력

제대로 된 용감함을 위해서 정확한 상황의 파악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기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목적지를 방향을 수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자원을 조달하는 ‘지원’ 작업을 하게 된다. 그 전 과정을 통하여 일관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용감함을 만드는 열정과 의지이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무데뽀(無鐵砲)’ 정신을 부르짖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말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인데, ‘지원(Support)'과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무데뽀에서 반전은 나오지 않는다. 이제 이런 말은 사전에서나, 영화에서나 보았으면 한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의 보급 장면 (출처 아마존)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의 보급 장면 (출처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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