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시선을 거슬러 돌려보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시선을 거슬러 돌려보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6.1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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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어느 시인이 이렇게 묘사한 곳은 어디일까? 예전에 고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온 시의 한 대목이다.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리던 산맥의 한 봉우리가 튀어서 형성된 섬을 소재로 한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이다. 처음 이 시를 배울 때 왜 제주도가 아니고 울릉도를 소재로 삼았을까에 대해 의문이었다. 해방공간에서의 어지러운 시절이라 일본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좌우 대결의 와중에서 제주도를 언급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던 것일까.

시인은 ‘자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어린 마음의 미칠 수 없음이‘ 간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라고 규정한다. 힘 있는 웅혼한 언어와 시풍의 유치환 시인이었지만 그에게 동쪽의 끝은 울릉도였다. 그마저 심해선을 넘어서 있는 존재였다. 남쪽으로 향했을 때 그의 시선은 제주도에서 멈췄을 것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의 지도를 그리거나 생각할 때 남쪽의 끝으로 제주도를 고정한다. 그리고 제주도의 시선도 위의 울릉도를 그린 시에서 보듯 ‘육지’라는 북쪽을 향해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선망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날개의 "일본의 실패를 곱씹어라!", '저성장 시대, 한국 기업이 살아남는 법'이란 문구들이 훨씬 가슴에 와 닿고 잠재적 독자들을 끄는 힘이 있던 책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전략 –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김현철 지음, 다산초당 펴냄, 2015)에 실린 지도 하나를 보기까지는 그랬다.

출처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전략 –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한국이 해양국가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통 우리가 보던 지도를 거꾸로 하여, 남쪽을 위로 가게 했다. 사람의 시선은 좌에서 우로 간다. 지도를 볼 때면 대개 중국의 북부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쪽으로 우리의 시선이 훑고 갔다. 그러나 이렇게 거꾸로 하니 제주도가 중심에 있고, 그 앞으로는 태평양에서 남중국해를 지나 인도양이 어른거릴 정도이다.

이 지도를 널리 보급한 인물로 원양어선 선장 출신의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꼽힌다. 지도를 거꾸로 봤을 때 오는 변화를 그는 이렇게 설파한다.

“한반도는 더 이상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매달린 반도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으로 삼고 드넓은 태평양의 해원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는 모습입니다.”

‘거꾸로 지도’는 2017년 해양수산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소개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어, 각 부처에 대대적으로 배포되기도 했다. 이후에 어떤 실질적인 효과가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관념 속의 영역을 확대하였으리라 확신한다.

시선을 문자 그대로 원래의 것에서 거슬러(反) 돌리면(轉)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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