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생각하는 남자들이 피는 담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생각하는 남자들이 피는 담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6.22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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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 잘 속지 않는 당신과 같은 사람은 켄트를 피울 자격이 있습니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08)이란 책의 211쪽에 나온 ‘1950년대 켄트 담배의 텔레비전 광고 문구’라고 소개된 문장이다. 책에서 말하길 ‘이 광고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로 불리는 1960~1970년대 미국에서 마케팅의 전형을 이끌었’다고 한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광고를 잘 보지 않거나 그러니 속지 않는 이들을 추켜세우면서 결국 그들이 광고하는 담배 브랜드를 피우도록 하고 있다. 이 광고를 보고 ‘그래, 난 광고에 속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자부심에 차서 켄트를 피운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책에 따르면 위 ‘텔레비전 광고 문구는 마케팅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이런 마케팅의 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이런 마케팅’이 어떤 마케팅인지가 분명하지 않은데,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사회를 재구성하고 자신의 편의에 때라 재단하는’ ‘가장 익숙한 집단적 표현 양식’이자 ‘사회적 언어이며 미학이 진화하는 창구’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대략 정의와 용례가 선이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과문한 탓이기는 하지만,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저 광고를 본 기억이 없어, 첫머리에 인용한 카피가 쓰인 실제 켄트 광고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검색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하게 인텔리들의 담배로 켄트를 자리 매기려 한 캠페인은 있었다.

More scientists and educators smoke Kent with the micronite filter than any other cigarettes. (과학자들과 교육자들은 마이크로나이트 필터의 켄트를 피웁니다.)

이런 헤드 카피를 단 광고들을 캠페인으로 한동안 집행했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맨 위의 카피를 달고 나온 광고 같지는 않았다. 다른 용의점이 훨씬 많은 담배 브랜드 광고를 발견했다. 역시나 전혀 모르던 광고 시리즈였다.

‘The man who thinks for himself knows...“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남자는 안다...)

‘총독’이라고 번역되는 대단히 권위적이면서 선민의식 같은 것을 브랜드 네임에서도 외치고 있는 ‘Viceroy(바이스로이)’라는 담배 브랜드에서 꽤 오랫동안 위와 같은 헤드 카피로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Only Viceroy has a thinking man’s filter...a smoking man’s taste! (바이스로이만이 생각하는 남자의 필터와 담배 피우는 남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생각을 위해서 담배를 찾는 게 자연스럽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바이스로이가 저런 헤드라인의 캠페인을 펼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생각이 없어 담배를 피운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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